심상치 않은 '배추보이' 사고 친다…스노보드 이상호 '0.01초' 승부

설상 간판…2018 평창 銀, 2022 대회 아쉬운 5위
최근 스노보드 월드컵 우승…"사고 칠 것 같다"

한국 스노보드의 오랜 간판 이상호 (대한체육회 제공)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초등학생 시절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눈 쌓인 고랭지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접한 특별한 스토리 때문에 '배추보이'라는 애칭을 얻은 이상호(31)는 한국 설상 종목의 개척자이자 오랜 간판이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알파인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스키 종목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사계절 눈 덮인 나라들이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설상 종목의 한계를 뛰어 넘는 쾌거였다.

'평행 대회전'은 기본적으로 스피드를 다투는 종목이다. 정해진 코스를 가장 먼저 내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한다. 보통 예선은 기록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리고 16강부터는 두 명씩 대결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워낙 빨라 근소한 차이로도 희비가 갈리는데, 이상호는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에서 그 '찰나'에 운 경험이 있다.

27세에 참가한 2022 베이징 올림픽은 이상호의 전성기였다.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월드컵에서 입상을 거듭한 그는 2021-22시즌 랭킹 1위로 베이징 대회에 임했고 예선부터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며 가장 좋은 기록을 작성, 사상 첫 금메달에 대한 희망까지 부풀었다.

하지만 순항하던 이상호는 8강에서 빅토르 와일드(러시아올림픽위원회 소속)에 패해 2연속 메달의 꿈이 물거품됐다. 당시 두 선수 기록이 단 0.01초 차이였다.

이상호가 8일 중국 장자커우 겐팅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알파인 평행대회전 8강전에서 아쉽게 탈락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고오 있다. 2022.2.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기록도 자신감도 최고조였기에 허탈감이 컸고 두고두고 미련 남을 결과였다. 하지만 이상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4년을 매진했고,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커리어 3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설상 종목에서 한국이 주목하는 선수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 나서는 최가온(18)과 이채운(20)이다. 하프파이프는 기울어진 반원통형 슬로프를 내려오며 공중 연기를 펼치는 종목이다.

최가온은 올림픽 시즌인 2025-26시즌 하프파이프 월드컵에서 3차례 출전해 모두 우승했다. 올림픽 개막을 약 3주 앞둔 지난 1월18일 스위스 락스 월드컵에서도 정상에 오른 최가온은 숀 화이트, 클로이 김(이상 미국)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충분히 겨룰 수 있다는 평이다.

이채운도 다크호스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슬로프스타일에서 금메달을 따며 국제무대 경쟁력을 입증한 이채운은 자신의 첫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노린다.

일찌감치 천재 소리를 들었던 두 '뜨는 별'과 견주면 이상호는 '지는 별' 느낌이었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큰 사고를 쳤다.

이상호는 지난 1월31일 슬로베니아 로글라에서 열린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24년 3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자 커리어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이었다.

결승에서 이상호는 1분01초25를 기록했다. 피슈날러(1분01초01)보다 0.24초 앞선 근소한 우위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찰나에 울었던 이상호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앞두고는 그 찰나 때문에 두둑한 자신감을 챙겼다.

정점에서 내려왔다는 시선이 있으나 내부 평가는 다르다. 이번 대회에서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후보다. (대한체육회 제공)

어느덧 서른 줄을 넘긴 나이, 이제 정점에서 내려왔다는 시선이 많지만 내부 평가는 다르다. 이수경 2026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장은 지난달 뉴스1과 인터뷰에서 "얼마 전 스노보드 코치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상호 선수 컨디션이 너무 좋다 하더라. 아무래도 대회가 임박하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당당한 자신감에 오히려 내가 감동받았다"면서 "정말 잘할 것 같다. '배추보이가 사고 한번 칠 것 같다'는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국 선수단 남자 주장(여자 주장 쇼트트랙 최민정)까지 맡은 베테랑 이상호는 "목표는 금메달이다. 지난 베이징 대회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당당한 출사표와 함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배추보이'보다 '배추도사'가 더 어울리게 된 이상호의 도전은 대회 초반인 8일 펼쳐진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