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4관왕 '바둑여제' 최정 "지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여자 다승·승률·연승 부문 압도적 1위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즐기면서 바둑둘 것"

'바둑 여제' 최정 9단이 26일 오전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2019년은 그야말로 최정(23)의 해였다.

지난 23일 끝난 제3회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최정은 여자기성전 2회 연속 우승과 함께 올해 4관왕 달성에 성공했다.

그는 앞서 세계대회인 제10회 궁륭산병성배, 제2회 오청원배 우승을 차지했고 국내대회인 제24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특히 궁륭산병성배와 여자국수전에선 모두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 최정은 여자기성전까지 개인 통산 처음으로 100국이 넘는 대국을 치르며 83승 19패(승률 81.38%·23일 기준)를 기록했다.

여자 다승·승률·연승 부문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린 그는 오는 30일 바둑대상 시상식에서도 이 부문 개인 타이틀을 이미 확정했다.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최정은 "올 한해는 그래도 잘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올해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둑공부든 대국이든 정말 즐겁게 했다"며 "즐겁게 대국을 하는 것 자체가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저 대국을 즐겼다는 최정은 기록이나 성적에도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정은 "성적이 잘 나오거나 기록을 세우면 기분은 좋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깨질 텐데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잘 두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경쟁하는 다른 기사를 의식하기보다는 내가 발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3세, 어린 나이지만 어느덧 프로에 입문한 지 10년 차를 맞이한 그는 패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최정은 "지는 것이 일상이다. 안 받아들이면 내가 힘들다"며 웃었다.

최정 9단. 2019.12.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가장 큰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

최정에게 있어 올해 큰 대회 중 하나는 11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제 10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였다.

최정은 라이벌로 불리는 위즈잉(중국) 6단을 8강에서 일찍이 물리치고 4강전에서 루이나이웨이(중국) 9단, 결승에서 저우홍위(중국) 5단을 차례로 제압했다.

지난해까지 위즈잉과 상대전적에서 11승 16패로 밀리던 최정은 올해 7전 6승 1패를 거두며 상대전적을 17승 17패 동률로 맞췄다.

최정은 2월 센코컵 월드바둑여류최강전 결승전에서 위즈잉에게 패했지만 이후 6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최정은 "신기하게도 위즈잉을 상대로는 홀수 해에는 많이 이기고 짝수 해에는 많이 지는 징크스가 있더라"며 "올해는 홀수 해라 많이 이겼던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위즈잉과는 라이벌 이전에 친한 친구 사이다.

최정은 "중국 기사 중에선 위즈잉과 제일 친하다. 한국여자바둑리그(2016년) 때 같은 팀이어서 위즈잉이 한국에 자주 왔다"며 "대회가 다 끝나면 같이 놀러다니기도 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최정은 궁륭산병성배 결승에서 중국의 17세 신예기사 저우홍위 5단을 물리치고 2014, 2017, 2018년에 이어 대회 통산 네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여자바둑 세계대회에서 3연패에 성공한 기사는 최정이 처음이다.

여자바둑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게 된 최정의 다음 목표는 통합기전 우승이다. 최정의 세계대회(남녀 통합) 최고 성적은 본선 16강이다. 2016년 2019년 LG배, 2018년 삼성화재배에서 각각 16강에 올랐다.

국내대회(남녀 통합)에서는 올해 참저축은행배 프로아마오픈전 본선 4강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최정은 "우선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고 국내대회에서도 정상에 서고 싶다"며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루이나이웨이 사범님처럼 통합기전에서 우승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최정 9단. 2019.12.2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7세 때 처음 접한 바둑…"아버지는 나의 가장 큰 조력자"

1996년 10월생인 최정 9단은 7세에 처음 바둑을 배웠다. 평소에 바둑을 즐기시던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돌을 잡게 된 그는 지금도 아버지를 가장 큰 스승이자 조력자로 꼽는다.

최정은 "아버지는 지금도 취미로 바둑을 두시는데 아마도 저보다 바둑을 더 좋아하실지도 모른다"고 웃으며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조언을 자주 해주셨는데 크면서 그 조언이 의지가 많이 되더라"고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그 말이 바둑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살면서 바르게 커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 덕분에 바둑에 재미를 붙인 최정은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우기 위해 10세 때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유창혁 9단의 제자로 들어와 프로 준비를 했고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 1년 6개월 만인 2010년 5월 여류입단대회에서 우승하며 만 13세 7개월 나이에 입단에 성공했다.

지난해 1월에는 여자국수전 우승으로 박지은 9단, 조혜연 9단에 이어 국내 여자프로기사 중 세 번째로 입신(入神·9단의 별칭)에 올랐다.

한국 여자기사 최연소(21세 3개월)·최단기간(입단 후 7년 8개월) 9단 승단 기록을 모두 최정이 갖고 있다.

최정은 "9단에 승단했을 때는 승단했다는 기쁨보다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9단만이 출전 가능)에 나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며 "단이 높으면 다들 신기해하는데 사실 요즘은 초단이 9단보다 센 경우도 많다"며 웃었다.

중학교 때 프로에 입단한 최정은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1학년 중반 학교를 자퇴하고 바둑 외길만을 걸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 학교를 의무적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싫었다. 자퇴를 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당분간 학업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최정 9단(한국기원 제공). ⓒ 뉴스1

◇ 대국 둘 땐 '돌부처'…"반상 밖에선 또래처럼 놀아요"

최정에게는 '돌부처'라는 별명이 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국을 펼치는 경우가 많아 이창호 9단과 같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최정은 "대국을 할 때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보이지만 대국이 끝나면 또래처럼 똑같이 논다. 보기보다 활발하다"며 활짝 웃었다.

대국이 없을 때 최정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활동은 노래부르기다.

최정은 "코인노래방을 자주 간다. 예전에 한창 갈 때는 3개월동안 매일 간 적도 있었다"며 "음악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랩에 빠졌다가 팝송을 들었다가 장르도 매번 바뀐다"고 말했다.

농구 등 비교적 활동적인 운동도 즐겨한다. 그는 "농구 동호회에 매주 한 번씩 참여하고 있는데 동호회에 나간지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며 "필라테스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하고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정의 활달함은 방송에서도 가감없이 드러났다. 2017년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해 숨겨놓았던 예능감을 뽐냈고 올해 9월에는 배성재 SBS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 '배거슨 라이브 ㅅㅅㅅ'에 출연했다.

최정은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방송에도 나가보고 다양한 활동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가끔 자신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본다는 그는 "예전에는 야구 선수 최정(SK 와이번스)이 먼저 떴는데 이제는 인물 프로필이 동시에 뜬다"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최정 선수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최정 선수의 기사가 뜨면 '좋아요'를 누른다. 경기를 잘하시면 괜히 내가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바둑 승부사이자 반상 밖에선 또래와 다름없는 최정 9단의 앞으로의 꿈은 지금처럼 재미있게 대국을 두는 것이다.

"바둑은 아무리 둬도 질리지 않는다"며 바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그는 "성적보다는 건강하고 재미있게 바둑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즐거운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hahaha828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