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비에 눈 뜬 '팔방미인' 이재영 "빛나지 않아도 좋아요"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공격 종합 3위, 수비 2위 등

흥국생명 이재영이 올 시즌 비득점 부문 수비에서 2위에 오르는 등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흥국생명 배구단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공격이 잘 안 돼도 뒤에서 받쳐주면 되잖아요."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레프트 이재영(19·178㎝)은 아직 만으로 20살이 안 된 프로 2년차 선수다. 선명여고 시절부터 쌍둥이 동생인 세터 이다영(현대건설)과 태극마크를 달아 큰 화제를 모았지만 수비보다는 공격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유의 호쾌한 스파이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2014-15시즌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지만 프로 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1라운드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던 이재영은 2라운드부터 상대의 집중적인 목적타를 버티지 못하고 흔들렸다. 이재영은 "솔직히 첫 시즌 중반에 멘붕(멘탈 붕괴)이 왔던 것 같다. 그때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그는 풀타임으로 뛰면서 신인상을 받았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1일 현재 이재영은 비득점부문 수비(리시브+디그)에서 황민경(도로공사·세트당 6.615개)에 이어 2위(6.512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공격 또한 나쁘지 않다. 공격 종합 3위(37.53%)로 토종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1라운드 MVP도 이재영의 몫이었다. 그는 시간차 1위, 오픈 7위 등 여전히 날카로운 창을 자랑한다.

이재영은 "예전에는 공격이 제일 좋았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꼭 공격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뒤에서 받쳐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오직 팀 우승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이재영(흥국생명)이 상대 수비벽을 피해 공격을 하고 있다. 2015.11.26/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 '독종' 이재영…체지방율 10%에 담긴 노력의 흔적

흥국생명 관계자는 최근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알려줬다. 선수단 휴식일 날 우연히 숙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의 연수원 사무실에 들렀다가 이재영이 혼자서 컴퓨터 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 이재영이 지켜보고 있던 것은 자신의 리시브와 스파이크 등 경기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구단 관계자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어린 선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재영은 프로에 온 뒤 체중이 4㎏정도가 빠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체지방율이 15%에서 10%까지 줄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훈련양의 결과였다. 단순히 살이 빠진 게 아니라 체지방이 줄었고, 근육량이 늘었다.

그는 "고교와 달리 프로에 온 뒤 더욱 치열하게 운동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항상 즐겁게 하고 싶지만 막상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좀 포동포동했는데 살이 빠지다 보니 (사진이)너무 못 생기게 나오는 것 같다. 정말 속상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코트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과 달리 이재영은 독종으로 꼽힌다. 올 여름 여자 월드컵에서 리시브 불안으로 제 몫을 하지 못하자 팀에 복귀한 뒤 엄청난 훈련양으로 약점을 보완했다.

그는 수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수한 반복 훈련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지난 시즌 수비 부문에서 세트당 5.298개에서 올 시즌 6.512개로 부쩍 상승했다. 지금도 휴대폰으로 리시브 훈련 장면을 찍어 놓은 것을 계속 보면서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한다.

실제로 경기 중 전체적인 시야가 이전보다 좋아진 느낌이다. 이재영은 "예전부터 순발력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코트에서 긴장하다보니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잘 못 받았다"면서 "확실히 요새는 볼이 조금씩 읽히는 기분이다. 상대의 스윙 폼 등을 보고 공을 쫓는 것 등을 배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미희 감독은 "(이)재영이가 경기를 보는 눈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예전에는 언니들의 위치를 따라가는 면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주관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쌍둥이 자매인 이재영(왼쪽)과 이다영은 V리그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여자 월드컵때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모습. (대한배구협회 제공). ⓒ News1

△ 선의의 경쟁 중인 쌍둥이 자매

이재영은 현대건설에서 세터로 활약 중인 동생 이다영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4-15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1, 2순위를 차지했던 절친한 자매지만 프로에 온 뒤에는 코트를 맞대고 서로를 꺾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1일 8승2패(승점 22)로 2위 기업은행(승점 19·6승5패), 3위 흥국생명(승점 18·7승3패)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재영은 "요샌 동생과 모바일 메신저도 잘 안 한다"고 웃었다. "예전 같으면 경기 전에 '서로 잘 하자'고 격려도 했었는데 올 시즌엔 대화가 부쩍 줄었다"면서 "경기에서 만나면 '내가 네 것을 (블로킹으로)잡겠다'고 하더라. 서로 잘 알다보니 몇 차례 블로킹에 잡혔다. 다음에 만나면 갚아줄 것이다"고 했다.

승부욕을 보이던 이재영은 올스타전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오는 25일 크리스마스날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리는 V리그 올스타전에서 팀 코니(흥국생명, 도로공사, KGC인삼공사)에 속한 이재영은 팀 브라운(GS칼텍스, 현대건설, 기업은행)에 포함된 이다영과 또 한번 상대로 만나게 됐다.

이재영은 "작년에 동생과 다른 팀에서 뛰어서 이번엔 한 팀에서 해보고 싶었는데 다시 갈려서 정말 아쉽다"고 했다.

이다영은 지난해 올스타전에서 화려한 걸그룹 댄스를 선보여 '세리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재영은 "다영이가 원래 예전부터 춤을 잘 췄다"면서 "학교 축제에도 앞장서서 나가고 했다. 저와는 조금 다르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흥국생명 이재영(가운데)은 프로 2년차 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재영은 "올 시즌 무조건 팀 우승을 이끌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흥국생명 배구단 제공). ⓒ News1

△ 긍정의 힘 "아픔을 겪고 나면 성장할 수 있다"

2013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고2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재영은 이후 인천아시안게임, AVC컵, 여자 월드컵 등 무수한 국제 대회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이재영은 자신의 롤 모델인 김연경(페네르바체)을 지켜보면서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좌절할 때도 있지만 모든 경기가 내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성숙한 답을 내놨다.

이재영은 "처음부터 다 잘할 순 없다"면서 "아픔을 겪고 나면 성장하는 것 같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좋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왜 안 돼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 더 안 되는 것 같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란 기대감을 갖고 빨리 털어내고 긍정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영의 목표는 단 하나다. 올 시즌 흥국생명의 우승이다. 지난 시즌 아쉽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흥국생명은 현재 3위에 올라있다.

이재영은 "화성(기업은행 홈구장)에 가보면 선수들이 우승해서 모자를 던지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면서 "꼭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해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alexe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