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은퇴' 서장훈, "내 농구인생은 30점"

서장훈 선수가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KT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3.3.21/뉴스1 © News1 박철중 기자

"농구인생에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살면서도 농구인생에 아쉬움을 남긴 것에 대해 후회하며 살 것 같다."

한국 농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지난 19일 은퇴한 서장훈(39). 그는 27년간의 농구 인생에 대해 "만족보다 아쉬움이 크다"며 "내 농구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30점"이라고 밝혔다.

서장훈은 21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가진 은퇴 기자회견에서 "오늘로 27년 간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며 "오랜기간 좋은 꿈 잘 꿨다"고 전했다.

그는 "나에게 있어 농구는 '애증'의 관계"라며 "정말 농구를 좋아했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런 농구이기에 지금까지 힘든일도 참 많았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서장훈은 "한국 농구가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떠나게 돼 가슴이 아프다"며 "뒤에서 프로농구를 응원하겠다"라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 그 많은 관심은 농구에서 느꼈던 행복을 무거운 부담으로 바꿔 놓았다"며 "항상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누르고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다.

이어 "누구보다 잘하려고 노력했으나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그런 과정에서 나온 조금 과한 모습들이 불편했다면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장훈은 "나는 한없이 부족했다"며 "부족한 나를 오랜 시간 봐주느라 힘들었을 농구팬에게 감사드리고 그동안 함께 해줬던 동료 선수들과 감독, 코치, 모든 농구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서장훈은 프로농구 통산 15시즌 동안 1만3231점(1위), 5235리바운드(1위)를 기록했다. 정규리그 MVP 2회(99-2000, 2005-2006시즌), 플레이오프 MVP 1회(99-2000시즌) 올스타전 MVP(2005-2006시즌), '베스트 5' 수상 8회, '이달의 선수상' 수상 7회 등의 업적을 남겼다.

다음은 서장훈과의 일문일답.

-앞으로 일정은. ▶여러가지로 많이 지쳤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당분간은 아무 계획 없이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은퇴 후에 뭘 하겠다고 생각하며 선수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겠다.

-농구계로 돌아올 가능성은. ▶사람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먼 훗날에 내가 할 역할이 있다면 농구계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런 뜻은 없다.

-한선교 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가 선수 협회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참여가능성은?▶선수협회가 생기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수협회는 선수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후배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 본다. 열심히 응원하겠다.

-선수 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경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공식 대회에 참가해 생애 처음으로 골을 넣었던 때다.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했다.

-반대로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매 순간 매 시합이 아쉬웠다. 내가 어느정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난 후부터의 시합은 매번 아쉬웠다. 시합이 끝나고 나면 항상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이것 밖에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을 했을 때도 조금 더 잘했어야 하지 않았나, 라는 후회가 들었다.

-한국농구가 위기에 직면했다. ▶주제 넘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제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좀 농구의 발전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농구경기력 향상과 국제경쟁력 향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프로야구의 성공을 봐서도 알겠지만 단순히 이제는 경기력으로 팬에게 어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팬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팔아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문화를 어떻게 잘 만들어서 기존의 농구를 좋아해 주시는 팬들을 더 잃지 않아야 한다. 하루 아침에 농구 인기가 올라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시대적인 한계나 세상의 흐름 등이 있기 때문에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발전시켜서 그 문화를 파는 그런 프로 농구가 됐으면 좋겠다.

-항상 이겨야 한다는 집념이 강한 선수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안티 팬들도 더러 있었다.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어느 순간부터 이기는것이 본전이 되어 버렸다. 100경기에 한 경기를 지면 잘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부터 그렇게 되다 보니 경기를 지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으로 시합에 임했고 그렇게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예민해 지는 부분이 있어 시합 중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 어필을 하게 됐는데 그런 부분들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하다. 좋은 게임을 하는 것이 최고의 팬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나의 신념을 진정성있게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서장훈 선수의 농구 인생은 몇 점.▶은퇴하는 다른 선수들이 '후회 없다', '할 만큼 했다'라고 말하더라. 굳이 내 농구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30점 정도다. 농구 인생에서 만족한 것보다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크다. 남은 제 인생 동안에도 선수생활의 아쉬운 부분을 후회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

-키와 상관없이 농구를 다시 하게 된다면 어떤 포지션을 맡고 싶은가. ▶다 한 번씩 해보고 싶다. 센터는 또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 해봤던 포지션도 한 번씩 해보고 싶다.

-서장훈에게 라이벌은.▶은퇴를 결심한 일주일 전부터 많은 농구계 선후배들과 연락을 했다. 감동적인 일주일이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의미가 있지만 굳이 꼽자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해오며 비교도 많이 된 현주엽 선수다. 현주엽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선수다. 또 행복했던 대학시절, 오늘날의 서장훈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던 시절을 함께 한 이상민 선수, 문경은 선수, 우지원 선수, 연대 동료들 모두 의미 있다. 이후 모든 선수들 다 좋아하지만 항상 힘들 때나 좋을 때나 함께해 준 김승현도 의미있다.

-선수시절 해외 리그에서 뛰었으면 하는 아쉬움은.▶내 능력이 해외에 나갈 만한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였다면 되든 안 되든 도전은 한 번 해보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은 있다.

-(전창진 감독) 어제는 감독으로서 오늘은 서장훈 선수의 팬으로서 질문한다. 서장훈 선수가 정상에 있다가 조금씩 내려오는 시점에 김주성이라는 선수 나타났다. 그러자 모든 언론이 김주성에게 쏠렸고 둘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속상하지 않았나.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니까 생각도 젊었을 것이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선수들과 항상 비교가되면서 선수생활 해왔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가 기존에 있는 사람보다는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에게 큰 기대를 갖는다. 새롭게 등장한 사람이 좀 더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의 김주성도 뒤에 나온 후배들에게 그런 비교를 당하게 될 것이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이같은 문제에 대해 누군가와 비교를 당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부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 당시 속이 조금 상하긴 했으나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있어 내가 더 자극받고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전창진감독과 마무리하게 됐다. ▶젊었을 때 전 감독과 함께 했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 감독은 그 전부터 오랜 시간 내게 좋은 큰 형님이자 멘토였다. 전 감독이 1년 동안 나를 넓은 마음으로 배려 해주지 않았다면 떠나는 길이 더욱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복을 받는구나 생각한다. 전 감독은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는 감독이다. 감독과 통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 전 감독은 사소한 개개인의 문제와 다름도 개의치 않고 그야말로 농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분이다.

-팬들의 사랑과 서장훈 선수의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았다. 팬들에게 어떤 서장훈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그분(팬)들의 몫이고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좋게 기억해주면 다행이다. 사실 나 정도의 선수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장훈 선수에 대한 평판은 항상 극으로 나뉘었다. ▶기억에 남았던 평가는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나서부터의 1,2년간의 평가다.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게 만든 원동력이다. 지금까지도 감사하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내게 언론이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이런 부분들이 시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린시절 여러 스포츠에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농구를 선택했다. 후회 안 하나.▶농구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 하지 않는다. 농구라는 종목이 있었기에 제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영광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플레이에 대해서는 조금 후회가 남는다.

-프로 처음 입문했을 때의 목표는. ▶목표는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이었다. 2,3배 더 잘하고 싶었다. 13000점이 아니라 2배, 3배 더 넣고 싶었다. 더 잘하고 싶었다.

-서장훈의 목보호대에 관심이 많다. ▶목보호대는 잘 간직할 것이다. 많은 분들이 왜 목보호대를 하느냐고 묻는데 대학 시절 처음으로 목을 다쳤다. 그러나 그때는 부상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목을 다쳤을 때 병원에 가니 의사가 농구를 그만 둬야 한다고 엄포를 놓더라. 그러나 나는 누구나 사고를 당해 목이 잘못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농구를 포기하면 그 동안의 농구인생이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했다. 농구를 계속 해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 대안으로 목보호대를 만들게됐다. 당시 삼성의 트레이너가 고생하며 만들어 준 목보호대다. 그걸 차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남이 뭐라고 해도 제 자신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다.

-대학시절의 인기가 지금의 김연아에 못지 않았다. 그 당시의 인기가 행운인가 독인가. ▶대학 시절 내가 인기 많다고 생각한 적 없다. 같이 다녔던 잘생긴 형들(우지원, 현주엽 등)의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인기가 있다기 보다 유명했을 뿐이다. 지금 후배들도 그때와 같은 환경에서 농구를 하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시대와 환경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농구선수들이, 특히 본인이 더 분발해 스스로 대중들의 그런 사랑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후배에 조언 한 마디. ▶어릴 때부터 언론을 접했고 말을 잘못해서 혼난적도 많다. 그래서 그동안 조언이라는 것을 상당히 조심했다.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후배들이)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지금 농구 환경이나 본인들의 위치를 제대로 보고 파악했으면 한다. 기사에 자기 이름이 몇 줄 나온다고 스타가 됐다고 착각하거나 자기를 좋아해주는 많지 않은 팬들 때문에 현실을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스타가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단순히 농구실력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남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자질을 본인 스스로 키워나가야 한다. 나를 보고 스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 스스로는 절대 스타라는 말은 함부로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타라는 말을 듣기에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서장훈이 생각하는 스타는.▶대중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그들로부터 존경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스타다. 우리나라 농구계에 스타소리를 들을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박지성 선수와 박찬호 선수, 선동렬 선수, 차범근 선수야 말로 진정한 스타다. 또 나를 보고 국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한 번도 누구에게 국보라는 말을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스스로도 국보는 커녕 너무나 미미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국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정말 큰 감동을 주거나 국위선양을 하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국보라는 말은 내게 너무나도 과분한 표현이다. 영광이면서도 송구스럽다.

-KBL에 대한 아쉬움은. ▶KBL에 대한 비난이 요즘 많다. 그러나 KBL이 그동안 잘 해온 것도 상당히 많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NBA와 유럽리그 한 두 리그를 제외하고는 가장 정리가 잘 돼 있는 리그가 KBL이다.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농구가 전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경제적으로 돈을 벌수 있게 하고 경기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을 높게 평가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농구 하나만 가지고 경쟁하기는 어려운 세상이기에 투자를 좀 더 공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KBL유지는 예전 농구의 인기에 기대온 편이다. 공격적인 홍보와 마케팅 등이 필요해 보인다.

-서장훈이 꼽는 베스트5▶못 하겠다. 지금도 현역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평가 자체가 무례하다. 마음속으로 간직하겠다.

-같이 뛰고 싶은 선수는. ▶꼭 은퇴하기 전에 한 번 뛰어봤으면 하는 선수들은 현주엽,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등이다. 대학시절의 그 모습을 은퇴 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승현도 함께 뛰고 싶은 선수다. 가까운 아이다. 이외에도 많다.

-은퇴후 하고 싶은 것은. ▶농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음에도 내 키가 커서 눈에 확 띄는 것 같다. 농구를 그만둔다고 해도 조용하게 지내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조용히 살고 싶다. 20여 년 넘게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로 시끄럽게 살았는데 이제는 좀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

-농구의 국가경쟁력을 되살리는 것이 농구의 인기 회복에 도움이 될까. ▶지금 후배들과 앞으로 나올 후배들의 자질은 충분하다. 그 선수들의 노력에 달렸다. 각 구단은 소속팀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한 마음 한 뜻으로 국가대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 더 큰 것을 위해 본인들의 욕심을 조금 줄여야 한다. 좀 더 체계화된 국가대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해마다 바뀌는 제도로는 장기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농구의 인기에 국가경쟁력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아시안게임과 ABC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대중은 알지 못한다.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면 농구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이 함께 가서 농구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농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 야구를 했었다. 그러나 학교를 옮기는 과정에서 키가 큰 나를 휘문 중학교 선생님이 알아봤고 선생님의 뜻으로 의도치 않게 농구공을 잡게 됐다.

-서장훈에게 농구란.▶농구는 내게 있어 애증이다. 정말 좋아했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이런 농구 때문에 지금까지 힘든일도 참 많았다.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된 강동희 전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가슴 아픈 일이다. 정말 좋아하던 선배다. (한숨) 가슴이 아프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조금 판단을 뒤로 미뤄 주시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서장훈 선수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역할이 컸을텐데. ▶두 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 정도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한 것에 반도 못했을 것이다. 못난 아들 때문에 고생 많으셨는데 앞으로 효도 열심히 하면서 살겠다.

jung907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