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LG 감독 "만족한 순간 내리막길, 계속 도전"[인터뷰]
3년간 통합 우승 두 번…"LG 색깔 만들었다"
3년 더 동행…"다함께 성장해야, 안 되는 건 없다"
- 이상철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염경엽(57) 감독은 명실상부 최고의 우승 청부사가 됐다. 단 한 번도 맡은 팀을 정상으로 이끈 적이 없었던 그는 '우승 못하는 팀' LG 트윈스 지휘봉을 잡고 세 시즌 동안 두 차례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22년 말 LG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염 감독은 첫 시즌이었던 2023년 LG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구단은 29년 만에 우승의 한을 풀었고, 염 감독도 자신에게 따라붙었던 '무관' 꼬리표를 뗐다.
한 번 고기를 먹어보니 이제 제대로 먹을 줄 알게 됐다. LG는 2025시즌에도 초반부터 치고 나가더니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를 압도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염 감독은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즌 초반 구단 내부에서 분석했을 때 우리 팀 전력으로는 (우승이 아닌) 최고 2위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며 "그런데 시즌을 치르면서 (순위 경쟁을 펼치던) 다른 팀에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왔다. 구단 프런트, 코칭스태프, 선수단 모두 이를 잡기 위해 절실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복기했다.
◇무색무취 LG를 바꾸다
염 감독에게 가장 잊지 못할 우승의 순간은 2023년 한국시리즈다. 팀과 감독 모두 간절하게 원했던 우승을,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번에 거둔 두 번째 우승은 '성장'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룬 시즌이었다"고 자평하면서 "선수들에게는 '우승할 수 있어'라고 독려했지만, 스스로는 '우승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임 후 세 시즌 동안 좋은 문화, 좋은 시스템이 뿌리내리면서 더 디테일하고 까다로운 팀으로 발전했다. 각자 성장하면서 짜임새 있는 경기를 펼쳤고 위기도 잘 극복해내는 등 우리 팀이 확실히 강해졌다고 느꼈다"며 "LG가 더 좋고 강한 팀으로 나아가는 비전을 보여준 우승이었다"고 강조했다.
LG는 염 감독이 부임한 뒤 정규시즌 247승 7무 178패(승률 0.581)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지난해에도 정규시즌 3위와 플레이오프 진출의 성과를 냈다.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게 상징성이 크다. 이 세 시즌 동안 모두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팀은 LG뿐이다. 매년 다른 팀의 성적은 들쭉날쭉했지만, '우등생' LG는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염 감독도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 가장 잘한 일로 LG만의 문화와 시스템 정착을 꼽았다.
그는 "외부에서 LG를 봤을 때 팀은 잘 구성됐는데 성적을 못 내서 안타까웠다. 좋은 선수만 많았을 뿐, LG가 뚜렷하게 어떤 야구를 펼치는지 특별한 색깔이 없었다"고 진단하면서 "그래서 LG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만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KBO리그 최고의 지략가로 불리는 사령탑이 추구하는 '디테일'이 LG에 이식됐다. 염 감독은 "팀 문화를 만들면서 시스템을 다듬었다. 공·수·주에 걸쳐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 것을 주문했다. 코칭스태프가 잘 보좌해주고 선수들도 열심히 따라와주면서 LG는 공수가 탄탄해 더 까다로운 팀, 득점 경로가 다양해진 팀, 짜임새 있는 팀이라는 색깔이 생겼다"며 "특히 선수들 역시 각자 톱클래스 선수로 성장하면서 확실히 좋은 팀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 목표는 2연패 '재도전'
최고의 3년을 보낸 LG와 염 감독은 동행을 이어간다. LG는 염 감독과 2028시즌까지 계약기간 3년, 총액 30억 원 조건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 총액 30억 원은 프로야구 출범 후 역대 감독 최고 대우로, 그만큼 LG는 염 감독에게 예우를 다했다.
달콤한 우승의 기쁨을 딱 일주일만 누렸던 염 감독은 이제 '다음 시즌'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는 "나 역시 책임감을 느끼며 최고 대우에 걸맞은 감독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두 번의 우승을 이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선수들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을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디펜딩 챔피언 LG의 다음 시즌 목표는 '2연패'이지만,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다. 2015년과 2016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두산 베어스 이후 한 번도 2년 연속 정상에 오른 팀이 없다. LG 역시 2연패를 노렸던 2024년에 한국시리즈 문턱도 밟지 못했다.
염 감독은 "만족하는 순간 내리막길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KBO리그 역사를 살펴봐도 우승팀은 다음 시즌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야구가 쉽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난 (2연패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고, 이는 새 시즌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 LG는 좋은 문화와 시스템, 선수 구성을 갖췄다. 어떤 방식으로든 닥칠 고비를 잘 대비한다면 충분히 2연패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LG가 정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우승 전력부터 지켜야 한다. 앤더스 톨허스트, 요니 치리노스, 오스틴 딘 등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은 물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김현수, 박해민도 붙잡아야 한다.
염 감독은 "야구에 열정이 넘치는 김현수와 박해민이 제2의 야구 인생을 위해서도 LG에 잔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LG에서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LG만의 좋은 문화와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도 두 선수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두 선수의 잔류를 기대했다.
더불어 염 감독은 기존 선수의 성장을 촉구했다. 그는 "선발진, 타선, 수비는 우리의 확실한 강점이지만 상대적으로 불펜이 고전했다. 장현식, 이정용, 함덕주가 전성기 모습을 찾는다면 우리는 내년에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2년 차 시즌을 맞이하는 김영우와 박시원이 한 뼘 더 성장하고, 신인 투수 양우진과 박준성이 김영우처럼 프로 무대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김윤식과 이재원에 구본혁과 천성호까지 잘 활약해준다면 선수층이 더 두꺼워져 한 시즌을 잘 치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떠날 사람, 영원한 건 없다
한때 LG 감독직은 과도한 부담감, 잦은 감독 교체, 기나긴 성적 부진 등으로 '독이 든 성배'로 불렸다. 아름다운 작별 사례도 별로 없었다.
그런 '감독의 무덤' 팀에서 염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했다. 1995년 고 이광환 전 감독, 1999년 천보성 전 감독에 이어 세 번째다.
계약기간은 3년 연장됐지만,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확실하게 보장되는 건 없다. 3년 뒤에도 LG와 염 감독의 동행이 지속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염 감독도 이런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는 "나는 이 LG 팀에서 영원할 수 없다"며 "팀을 떠나는 순간까지 구단과 선수들, 팬들에게 'LG를 위해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남겼던 리더'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표어는 야구인 염경엽의 좌우명이다. 행동으로도 옮긴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꿈을 이뤘다.
염 감독은 "무언가를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계속 도전하고, 그 성공을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나는 25년 동안 달려왔고, 그 피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LG 감독으로 두 번의 우승으로 보답받았다. 정말 행복하다"며 "그래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성공은 혼자만 잘해서 이룰 수 없다. 염 감독이 평소 강조했던 것처럼 우승도 구단, 프런트, 지원팀,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하나가 됐기 때문에 일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감독은 "항상 저의 성공에는 모두의 성장이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성장해야 LG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이 돌아와 나의 성장을 만들어준다"며 "LG가 더 좋은 팀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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