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번트 파울 수비→병살타' LG 구본혁 "내 인생 최고의 선택"

KS 5차전 재치 있는 수비로 통합 우승 마침표 견인
주전급 발돋움…"내년엔 꼭 정규시즌 100안타"

LG 트윈스 내야수 구본혁. 2025.11.1/뉴스1 ⓒ News1 이상철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백업 멤버'였던 구본혁(28·LG 트윈스)에게 2025년은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다. 알에서 깨어난 그는 주전급 내야수로 자리매김하더니 한국시리즈에서는 '주전 3루수'로 뛰며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LG가 우승을 확정한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빠른 상황 판단과 재치 있는 수비로, 큰 위기를 막아냈다.

통합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뒀던 LG는 경기 초반 2-1로 앞서갔지만 수많은 찬스에서 대량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한화가 반격을 펼쳤고 3회말 무사 1, 2루가 됐다.

포스트시즌에서 16타점을 올리는 등 가장 껄끄러운 타자 문현빈이 정면 승부 대신 희생번트를 시도했다.

타구는 3루 방향으로 굴러갔는데, 구본혁은 이를 잡지 않고 다리를 들어 흘렸다. 뒤이어 파울이 선언됐다.

주자 2명을 한 베이스씩 보내더라도 공을 잡고 1루로 던져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는 게 정석처럼 보였지만, 구본혁은 '창의적인 수비'를 택했다. 1사 2, 3루보다 무사 1, 2루에서 아웃카운트를 잡아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구본혁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활짝 웃은 뒤 "타구가 회전 때문에 파울 라인을 벗어날 거라고 확신했다. 문현빈이 시리즈 내내 잘 치고 있었지만, 한 번은 못 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우리 선발 투수 앤더스 톨허스트의 구위를 믿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3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5차전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LG 3루수 구본혁이 3회말 무사 1,2루 상황 파울 라인으로 향하는 한화 문현빈의 번트 타구를 응시하고 있다. 2025.10.31/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구본혁의 '족집게' 예상은 적중했다. 톨허스트는 문현빈을 2루수 병살타로 처리했고, 계속된 2사 3루에서 노시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동점 혹은 역전 위기를 넘긴 톨허스트는 이후 안정감을 찾으며 7회말까지 한화 타선을 꽁꽁 묶었다.

구본혁은 "병살타가 나와 정말 행복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세리머니도 톨허스트가 아닌 내가 더 크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번트 파울 타구를 흘려보낸 뒤) 더그아웃에서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소심하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를 한 번 믿어보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다행히 실점 없이 이닝을 끝내자, 코치님과 선배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고 전했다.

구본혁은 정규시즌 내야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2루수, 3루수, 유격수 등을 맡으며 자기 역할을 다했다.

여기에 포지션이 추가될 뻔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좌익수 훈련도 소화했다.

그런 상황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1루수 오스틴 딘은 지명타자로 뛰어야 했고, 3루수 문보경이 대신 1루수로 이동했다. 그리고 구본혁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3루수로만 뛰었다.

구본혁은 "한국시리즈 1차전 전날 3루수로 계속 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좌익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3루수를 맡게 돼 정말 기뻤다. 걱정도 싹 사라졌다"고 전했다.

31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5차전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7회초 1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LG 구본혁이 2루타를 치고 있다. 2025.10.31/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2019년 LG에 입단한 구본혁은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주로 대수비를 맡아 타석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 뛰어난 수비와 비교해 타격이 약하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타율도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시즌 연속 1할대에 그쳤다.

그러나 염 감독이 부임한 뒤 출전 기회가 늘어났고, 타격 능력도 좋아졌다. 구본혁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타율 0.286(343타수 98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717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0.333(15타수 5안타)으로 존재감을 보이기도 했다.

목표였던 100안타까지는 2개가 모자랐지만, 한국시리즈 안타까지 더하면 세 자릿수 안타를 달성한 셈이다.

구본혁은 "(염경엽) 감독님이 꾸준히 기회를 주셔서 타격에도 자신감이 생겼다"며 "전반기까지는 감독님이 제시한 타격 방향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반기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본혁의 전반기 타율은 0.234였지만, 후반기에는 0.366으로 크게 높아졌다.

또한 그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통틀어 안타 103개를 쳤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정규시즌 100안타를 치고 영양가 있는 안타도 늘리고 싶다. 체력을 키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