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엔 우승 넘봤던 롯데 추락…예견된 8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

'10승 투수' 데이비슨 방출 후 9승3무24패 부진
불펜 부하, 결국 수면 위로…총체적 난국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25.8.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가을야구 소망은 올해도 이뤄지지 않았다. 2018년부터 8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이 기간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지 못한 구단은 롯데가 유일하다.

거인군단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롯데는 26일 혈투 끝에 삼성 라이온즈를 10-9로 꺾고 포스트시즌 진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갔지만, 28일 두산 베어스에 2-7 패해 가을야구 경우의 수가 모두 사라졌다.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두 차례(1984·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지만 다 옛날이야기다.

'만년 약체' 롯데는 2013년 이후 포스트시즌 무대에 딱 한 번 올랐다.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고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에 오른 '9구단' NC 다이노스와 '10구단' KT 위즈는 물론 기나긴 암흑기를 끊어낸 한화보다 떨어지는 성적이다.

롯데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해마다 반복된 일이지만, 올 시즌에는 더욱 충격이 크다. 한때 '3강 체제'로 우승 경쟁을 펼쳤던 데다 가을야구 확률이 90%를 넘었지만, 50여 일 만에 수직으로 하락했다.

두산 베어스에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던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뒤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롯데는 '5강 후보'로 꼽히며 기대감을 높였다.

승리 세리머니 펼치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2025.5.7/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뚜껑이 열린 뒤에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롯데는 LG 트윈스, 한화를 바짝 쫓으며 힘을 냈다. '봄데'(봄에 강한 롯데) 오명을 깨고 더위가 기승을 부린 여름에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전반기 성적은 47승3무39패로, 3위에 오르며 반환점을 돌았다. 10개 구단 체제가 된 2015년 이래 롯데의 전반기 최고 성적으로 김 감독이 롯데 지휘봉을 잡은 뒤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 전반기 성적(8위·35승 3무 42패)과 비교해도 12승을 더 수확했다.

부상자가 많았지만 대체 선수들이 크게 활약해줬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전민재와 정철원도 주전 유격수,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다.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찰리 반즈를 방출하고 알렉 감보아를 영입한 결단도 일단 성공적이었다.

8월6일 선두 LG에 4게임 차로 뒤져있던 롯데는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진 '10승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내보내는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정규시즌 우승 경쟁에 불을 붙이고, 나아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기 위해 더 강력한 선발 투수가 필요하다고 판단이었다.

그러나 롯데의 성적은 오히려 고꾸라졌다. 8월7일 KIA 타이거즈전부터 23일 NC 다이노스전까지 12연패(2무 포함) 수렁에 빠지는 등 두 번째 외국인 투수 교체 후 37경기에서 겨우 9승(3무25패)에 그쳤다.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 2025.9.5/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새로 합류한 빈스 벨라스케즈는 10경기 1승4패 평균자책점 9.93으로 참담한 성적을 냈고,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빠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외국인 투수 교체 실패였다.

그렇다고 롯데의 추락을 단순히 외국인 투수 교체 실패로 볼 수는 없다.

롯데는 20년 만에 충격적인 12연패를 당할 때 총체적 난국에 빠졌고, 김 감독 역시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시즌 중반까지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타선은 '소총부대'의 한계를 드러냈고, 집단 슬럼프에 빠졌다.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홈런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마운드와도 엇박자가 났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쓸 투수만 썼던 불펜도 결국 과부하에 탈이 나면서 결정적 순간마다 무너졌다. 연투가 많았던 정현수와 정철원은 각각 82경기, 74경기에 등판하는 등 시즌 경기 수의 절반 이상 호출받았다.

여기에 풀타임 선발 경험이 없는 감보아에 대한 세심한 관리도 없어 마운드가 더더욱 흔들리는 치명타가 됐다. 커리어 처음으로 100이닝 이상 투구, 피로가 누적된 감보아는 8월 이후 9경기에서 6패(무승) 평균자책점 5.51로 흔들렸다.

롯데에 마지막 가을야구 기회는 있었다. 지난 19일 경쟁팀 KT가 4연패를 당해 롯데는 '어부지리'로 공동 5위에 자리했다. 잔여 8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충분히 포스트시즌 진출을 바라볼 수 있었다.

고개 숙인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2025.8.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그러나 롯데는 20일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25일 LG전까지 4연패 늪에 빠졌다. 이 4경기에서 무려 39점을 헌납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고,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롯데는 악몽 같은 8월을 보낸 뒤 9월 반등을 다짐했지만, 성적은 더 퇴보했다. 롯데의 9월 승률은 0.267(4승11패)로 8월(0.304·7승3무16패)보다 더 떨어졌다.

9월 평균자책점은 7.24로, 마운드가 완전히 무너졌다. 선발진마저 조기 강판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균열이 생긴 불펜은 안정감을 잃었다. 경쟁팀은 투수를 총동원하는 등 포스트시즌 같은 운영을 펼쳐 승리하는데, 마운드가 삐거덕거린 롯데는 그런 싸움을 펼칠 수 없었다.

실책도 쏟아져 잡을 수 있던 경기를 놓쳤다. 롯데의 9월 실책은 17개로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경기당 평균 1개 이상이었다. 10일 한화전에서는 무려 5개의 실책을 남발했고, 25일 LG전에서도 치명적 실책 3개로 자멸했다.

거인군단의 몰락은 충격적이다. 손에 거의 쥐고 있었던 포스트시즌 진출권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번에는 달라진 줄 알았지만, 올해도 롯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롯데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롯데의 8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는 구단 창단 이후 가장 긴 '암흑기'다. 8개 구단 체제였던 2001년부터 2007년까지 '8위-8위-8위-5위-7위-7위'에 그쳤을 때보다 깊은 수렁이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