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없는 집단' 경계선지능인…"자립 위한 국가 책임 명문화 해야"
[경계선의 집]⑥ 경계선지능인 자립지원 관련 법안 발의한 서미화 의원 인터뷰
"경기도 광주 대안가정 사건, 제도적 공백이 초래하는 비극 여실히 보여줘"
- 권진영 기자, 신윤하 기자, 권준언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신윤하 권준언 기자 =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그 숫자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경계선지능인 이야기다. 형식적으로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일컫지만 의사결정 능력은 당사자가 놓인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뉴스1은 최근 탐사기획[경계선의 집]을 통해 경기도 광주에서 불거진 대안가정 내 경계선지능인 학대 사건을 보도해 왔다. 해당 대안 가정을 운영하던 A 씨는 경계선지능인·지적 장애인·봉사자 등에 신체 마사지를 상습적으로 요구하고 폭행한 혐의로 현재 경찰 수사망에 올랐다.
①[단독]"경계선지능인 홍두깨 폭행·마사지 요구"…지원단체 임원 학대 의혹
②[단독] 경계선지능인에 꽂힌 폭언·노동착취…'아빠 자처' 사회복지사의 이면
③[단독]'홍두깨폭행 의혹' 장애인 대안가정, 알고보니 미신고 시설
④제도·돌봄 공백 속 '경계선지능인' 가둔 가스라이팅의 굴레
⑤[단독] '난쏘공' 조세희 작가 도용한 '학대 의혹' 경계선지능인 단체
이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와 정책이 필요할까. 지난 6월 '경계선지능인 자립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앞으로 남은 과제를 짚어보았다.
-문제가 된 경기도 광주의 대안 가정을 운영하던 A 씨는 "의사 표현이 가능한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이라며 장애인 시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이번 경기도 광주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 만들어낸 '구조적 학대'다.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고, 보호받을 법적 근거도 없어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왔다. 그 틈을 타 돌봄을 명분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착취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현행법상 경계선지능인은 장애인이 아니다. 발의된 법안은 이런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려는 이들을 막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법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입법자의 첫 번째 책무다. 이번에 발의한 '경계선지능인 자립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이 문제에 대한 제도의 최소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누구든지 아무 기준 없이 "이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니 내가 관리하겠다"는 식의 권한 남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가 경계선 지능인의 정의를 마련하고, 공적 서비스와 연결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즉 경계선지능인이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 책임을 명문화하는 것이 이번 법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IQ 이외에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경계선지능인의 개념이 모호한 상태다. 발의한 법안에서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경계선지능인은 기존 발달장애 범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수한 위치에 있다. 단순히 IQ만으로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다. 현실에서는 IQ 1~2점 차이로 장애인 여부가 갈리고 이로 인해 삶의 궤적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1~2점이 당사자의 욕구와 지원 필요성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법에서는 경계선지능인을 '발달장애인은 아니지만 인지능력 등의 부족으로 학습과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대통령령으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제도의 틈새를 제도로 메우기 위해서는 기존 장애 분류에 억지로 끼워 넣기보다는 실질적인 '지원' 관점에서 틀을 세워야 한다.
-경계선지능인의 '의사 결정 능력'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나
▶단순히 IQ 수치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환경·경험·지원 경험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의사 결정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제도는 '의사결정 능력 유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을 도울 환경과 지원체계가 마련돼 있는가'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번 법안에는 정보 접근·상담 지원·권익옹호 등을 포함해 당사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을 담았다.
-국내에는 얼마나 많은 경계선지능인이 있나
▶보건복지부는 국내 약 565만~667만 명이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할 것으로 추산한다. 2025년 8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5093만 명)의 약 11~13% 수준으로 인구 9명 중 1명꼴이다.
이 수치는 그만큼 인지기능·학습 능력·사회적응에 일정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이 인구 전체가 공적 서비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사자의 지원 욕구와 필요 수준은 매우 다양하며 실제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의 규모는 훨씬 작을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이 아닌 별도로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제정법을 만들려는 이유는
▶경계선지능인을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새롭게 정의할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집단은 의료적 장애 판정 기준이나 장애인등록제도와는 구분되는 정체성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 지능지수 기준을 일부 활용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장애'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을 고유한 사회적 정책 대상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소관 기관이 정책적 논의를 담당해야 하나
▶복지부 내에서도 장애인정책국이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실' 또는 '인구·사회서비스정책실' 소관이 되어야 한다고 법안을 통해 공식 제안했다. 이 법은 장애 판정을 전제로 한 복지확장이 아니라, 당사자의 삶과 자립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새로운 사회서비스 체계의 기초를 만드는 작업이다.
-정책 논의를 위해서는 정확한 현황 파악이 선행돼야 하는데 법안에 담긴 '실태조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후인 만 6~7세를 중요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학습·사회성·의사소통 등의 어려움이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기존 제도에서는 그저 '학습이 느린 아이' 또는 '주의가 산만한 아이'로만 간주돼 진단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법안은 실태조사를 특정 연령대에 국한하지 않고 생애 전반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주기적 실태조사라면 몇 년에 한 번씩 진행되나
▶'3년마다 실태조사를 의무화' 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초기 발굴부터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계선지능인은 어느 제도 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숫자 없는 집단'이었다. 제대로 된 통계 없이 제도가 설계될 수는 없다. 과장된 수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도 공백에 놓인 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꼭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정밀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에 맞춰 실수요자 중심의 비용 추계와 정책 타당성 분석을 병행할 때다.
-군에서도 실태조사가 이뤄지나
▶병무청은 이미 1992년부터 병역판정검사 과정에서 경계선지능인 평가 기준을 별도로 도입해 왔다. 최근 4년간 매년 800~1100명 안팎의 남성이 '경계선지능' 판정을 받고 있다. 제도적 수요가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다.
-'자립'과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강조하는 이유는
▶경계선지능인은 일생을 통틀어 제도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학령기에는 특수교육 대상이 아니고, 성인이 되어도 장애인 서비스 대상이 아니다. 지원의 끈이 한 번도 닿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돌봄·교육·직업훈련·주거·건강 등 모든 삶의 단계에서 적절한 맞춤형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애주기별로 욕구가 달라지는 만큼 제도도 그에 따라 설계돼야 한다.
-그렇다면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는 이들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
▶단순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당사자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일이다. 신뢰와 존중, 권리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복지사·상담사 등 관련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교육과 연수를 통한 지속적 역량 강화 시스템도 요구된다.
반면 반복적으로 인권침해나 학대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종사자 자격을 제한하거나 (관련 기관에) 취업을 금지하는 등의 규정도 병행돼야 한다. 이번 경기도 광주 사건처럼 '선의'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절대 반복돼서는 안 된다.
-법안 발의 후부터 약 4개월 동안 어떤 진척이 있었나
▶이번 법안은 지난 6월에 발의돼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복지부와 기초적 정책 협의를 시작했고, 시민사회단체와도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제도 설계의 현실성과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저를 포함해 경계선지능인 관련 법안이 10건 이상 발의됐다. 이 문제에 대한 국회의 관심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국회 통과까지 앞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여야 합의·타 법률과의 조정·재정 부담 문제 등 다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일각에서는 "경계선지능인 인구가 너무 많다"거나 "예산이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실수요 기반 정책 효과 분석이 병행돼야 한다.
또 최근 경기도 광주 대안가정 사건은 제도적 공백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병무청은 매년 1000명 안팎의 경계선지능인을 별도 관리하고 있지만 정작 복지 정책은 아무런 손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이 불균형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이 법안이 정치적 논쟁을 넘어 실질적 삶의 권리를 논의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법안이 제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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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계선의 집] 경계선지능인과 지적장애인, 그리고 이들의 '아빠'를 자처하던 사람이 함께 살던 대안가정. 아빠는 경계선지능 장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들이 아빠로부터 탈출했다. 아들들은 폭행과 원치 않는 신체 접촉, 노동 착취를 당했다고 했다. 그 집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뉴스1>은 피해를 입었다는 '아들들'과, 억울하다는 '아빠'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