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산재 유족 "쿠팡 보상안은 꼼수…탈팡 막기 위해 보상으로 둔갑"

5만원 '쿠폰' 보상안에 "보상 아닌 연말 판촉 행위" 비판
산재 은폐 의혹에 유족들 "의장 명의 사과와 엄정 수사" 촉구

안전한쿠팡만들기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쿠팡 배달기사 유가족들이 2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스티커를 문에 붙이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산업재해 은폐 의혹을 두고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이 제시한 보상안에 대해서는 "보상이 아닌 연말 판촉"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과 쿠팡 소속 노동자, 쿠팡 산재 사망자 유족 등 40여 명은 29일 서울시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이들은 '김범석 책임져라', '범죄기업 쿠팡'이라는 깃발과 산재 사망자의 영정 등을 들고 "3000만 명 정보 유출 김범석을 강제 소환하라", "반노동 살인기업 김범석을 처벌하라"고 외쳤다. 본사 입구에 '쿠팡은 범죄기업'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앞서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은 전날(28일) 이번 사태 이후 처음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내용으로만 한정됐으며 그간 불거진 산업재해 은폐 의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어 쿠팡 측은 이날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1인당 5만 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겠다는 보상안을 내놨다.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쿠팡이 급하긴 급했나 보다. 오늘 아침에는 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에게 1인당 5만원을 배상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자기 돈을 들여서 물건을 더 사야만 쓸 수 있는 그냥 쿠폰이었다"며 "우리는 이런걸 '꼼수'라고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앞서 쿠팡이 미국 정계에 막대한 로비 자금을 투입했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쿠팡은 책임지는 대신 겁 주고 윽박지르는 꼴"이라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쿠팡의 보상안을 가리켜 "이것이 보상인지 연말연시 판촉행위인지 모르겠다"면서 "쿠팡 이츠의 경우 일상적으로도 5000원, 6000원씩 할인 쿠폰을 뿌려왔고 그 책임을 배달 노동자와 소상공인에게 져 왔다. 탈팡하는 시민들을 막고자 판촉하는 것을 보상으로 둔갑시키는 행태"라고 질책했다.

사태 진화보다는 논란을 확산시키는 본사의 대처에 일선 노동자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쿠팡 물류센터 소속 노동자 최 모 씨는 "(정보 유출 사태로) 물량이 급감하자 쿠팡은 일용직 노동자 TO부터 줄였고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무급 휴가를 뿌리고 있다"며 "개인 정보 유출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책임을 지지 않고 그 결과는 현장 노동자들의 생계 불안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가지 더 두려운 현실은 쿠팡 물류센터 현장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쓰러지고 목숨을 잃어도 회사가 제대로 알리지 않아 모르는 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안전한쿠팡만들기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과 쿠팡 배달기사 유가족 등이 2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범죄기업 쿠팡 규탄 노동자·시민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산재 사망자 유족들도 같은 비극이 반복될까 우려했다. 일부 유족은 쿠팡이 산재 인정 여부를 번복하려 소송에 나섰다고 했다.

2021년 4월 용인 2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고(故) 최성낙 씨의 아들 최 모 씨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됐는데 쿠팡은 법원에 그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걸었다"며 "이 싸움은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비슷한 두려움 속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가족의 문제"라고 말했다.

2020년 6월 목천 물류센터 구내식당에서 근무하던 중 쓰러져 숨진 하청 노동자 고 박현경 씨의 남편 최 모 씨는 "산재 인정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고 원인 은폐 및 증거 인멸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김범석 의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조치 △국회와 수사 기관의 엄정 수사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문화 확립을 요구했다.

2020년 대구 칠곡 물류센터에서 근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고 장덕주 씨의 어머니 박 모 씨는 "사과문 속에 쓰러져 간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경악스럽다"며 "청문회 과정에서 김범석과 쿠팡의 문제를 낱낱이 밝혀주고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주길 국회의원들에게도 간절히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