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헤어질 권리를 위해"…한겨울 농성장의 기록
[이주민 인권 기획 : 강제단속, 강제斷命]① 강제단속 즉각중단 농성장
"슬리퍼 차림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인간의 품위는 유지할 수 있어야"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거기에 절벽이 있는지 몰라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공장 (강제)단속이 멈추지 않으면 없어질 수 없는 문제예요.-이춘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
지난 10일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부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 한 젊은 여성의 영정사진과 함께 '강제단속 즉각 중단 고(故) 뚜안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 뒤로는 얇은 분홍색 스티로폼으로 뼈대를 세우고 비닐로 둘러싼 텐트가 마련됐다. 잠시 바람과 비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밤을 지새우기는 턱없이 허름해 보였다.
이곳에서는 18일 현재까지 일주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이주민 노동자 청년 뚜안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법무부의 강제단속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나선 이주민 노동자 인권 활동가 4명이 얼음장 위를 지키고 있다.
스물 다섯살 뚜안은 지난 10월 28일 오후 6시 40분쯤.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서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법무부 대구출입국과 외국인사무소(출입국)의 갑작스러운 합동단속이 실시된 그날이었다. 2019년 19세의 나이로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그는 계명대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뚜안이 발급받은 비자는 D-10. 구직이 가능한 비자였지만 제조업 취업은 제한됐다. 공장 취업 2주 만에 맞닥뜨린 단속반을 피해 그는 공장 구석에서 구석으로, 에어컨 실외기 창고 안쪽에 숨어 있다가 3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뚜안의 코리안 드림도 추락했다. 뉴스1은 뚜안과 같은 사례가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농성 이틀차에 뉴스1이 만난 이춘기 경주이주동자센터 소장은 이주민 노동자들이 느끼는 강제단속 공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죽음은 죽어버리면 다 잊어버리지만 이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산다. 출퇴근하다가, 식료품을 사러 가다가, 버스에 탔다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잡힌다."
이어 "자기들(법무부 출입국) 책임을 떠나 행정 집행 중에 벌어진 사고라면 그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시민사회단체들과 한번 들여다보자고 했다면, 유족들과의 문제들을 다 해결했겠지만 법무부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대통령 면담, 법무부 장관 면담도 요청했지만 더 이상 이렇게 행정 집행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 크게 알리기 위해 올라왔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미등록 이주민 강제단속의 문제점과 근본적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발표된 울산이주민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5년 10월까지 단속·구금 과정에서 사망자는 총 25명, 부상자는 총 32명 발생했다.
부상자 중에는 자살 시도자 및 유산을 경험한 임신부의 숫자도 포함됐다. 자료에 집계된 사상자는 어디까지나 외부로 알려지게 된 사례에 불과해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무부는 안전조치를 한다고 하지만 수백 명이 일하는 공장에 20~30명에 불과한 출입국 단속반이 빈틈없이 도주로를 차단하고 현장을 통솔하기란 역부족이다. 더구나 공장에는 프레스기 등 위험한 중장비들까지 돌아간다.
이 소장에 따르면 단속반이 배치되지 않은 곳을 찾던 한 이주민 노동자는 7~8m 높이의 옹벽에서 옆 건물로 뛰어넘다가 추락해 대퇴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절벽이 있는지 몰라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공장 강제단속이 멈추지 않으면 없어질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이 소장은 "이건 업장이라는 사적 공간에 단속반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장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압수수색처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사업주에게 미리 고지하고 절차대로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무부는 강제퇴거와 관련된 출입국 관리법 제46조 등을 들어 적법 단속이라는 입장이다. '고 뚜안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정부는 뚜안 사망 당시 단속 지휘체계·현장 대응·구조 지연 여부 등 기초 사실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지 않았다.
뚜안의 죽음은 그 자체로 비자와 이주민 노동자 취업 실태의 모순을 담고 있다. D-10 비자가 있다면 원칙상 한국에서 취업 준비 활동을 할 수 있다. 인턴십 활동에도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소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국인들도 구하기 힘든 인턴십이다. 이주민노동자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다"라고 했다.
편의점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려고 해도 '쪼개기 알바' 고용이 만연한 한국에서는 단기간에 필요한 생활비를 벌기가 마땅치 않아 제조업 공장으로 이주민 노동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장의 설명이다. 합법 체류자 뚜안이 불법 노동자가 된 까닭이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주민 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한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유학생 비자의 허점을 지적했다.
"네팔에서 한국에 들어오려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시험을 쳐서 패스해야 하는데 거칠게 표현하면 로또 수준이다. 어렵기도 하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 3~4년간 시험 준비만 하다 허송세월이 될 수도 있으니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유학생 비자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태국의 경우는 90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기점으로 본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없다 보니 미등록이주민으로 남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그는 단기 순환형 체계로 설계된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정책은 기본적으로 쓰다 버리는 식이다. 공장은 단순 작업의 반복이니 사실 굳이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추방돼야 그 빈자리를 숙련도가 낮은 저임금 이주노동자가 채울 수 있는 '자본의 이해관계'"라며 "숙련 노동자라고 해도 임금 조건이 별 차이 없고 한편으론 필요한 인력인데 이 사람들을 단속하는 이유는 이들의 신분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길들이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신호 위반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빨간 신호등에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것은 법을 어긴 것이 맞다. 그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고,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지적할 수도 과태료를 물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체포해서 구금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법이라고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고 인도적 절차를 무시할 정도의 사유는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김 소장은 "사람이 만나서 헤어질 때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름대로 관계 정리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헤어지는 과정이 너무 폭력적"이라면서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어쨌든 한국에 와서 5년이든 10년이든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는 슬리퍼 차림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유지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취재진과의 인터뷰 중 잠시 말을 멈췄다. 눈가가 촉촉해져 생각에 잠긴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얼굴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슬리퍼 차림으로 작별인사도 채 하지 못하고 끌려간 이들의 얼굴들이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비준을 머뭇거리는 유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주노동자 권리협약·1990년)'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은 공무원·개인·사집단 또는 기관 등 그 누구에 의한 폭력·상해·협박 및 위협에 대해서도 국가의 효과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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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스물 다섯 베트남 청년 뚜안이 지난 10월 28일 추락해 숨졌다. 그날 그를 벼랑으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추락은 단순한 사고인가 구조적 참사인가. 뉴스1은 12월 18일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강제단속 과정 중 반복적으로 '강제 단명'하는 이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상을 들여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