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준하선생 두개골 사진 공개…타살의혹 증폭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 News1

유신정권에 맞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지난 1975년 의문사한 고 장준하 선생(아래사진·1918~75)의 두개골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의 타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16일 장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면서 찍었던 유골 사진과 유골을 검시한 법의학 교수의 소견서를 공개했다.

3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장 선생의 두개골에는 지름 6~7cm 크기의 원형으로 파인 상흔이 보였다. 상처 난 부위는 여러 조각으로 깨져 깊이 1cm가량 함몰돼 있었다.

오른쪽 골반이 네 조각으로 골절돼 있었지만 다른 척추나 팔, 다리뼈 등은 온전했다.

유골 검사를 한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는 소견서에서 "사망 원인은 머리 손상으로 본다"며 "머리뼈 골절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다. 그러나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장 선생의 유족들이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서 유골 검시를 의뢰했고 검시 결과 두개골 뒤쪽에 지름 5~6cm의 뻥 뚫린 구멍과 금이 간 흔적이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족들은 경기 파주시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된 장 선생 유골을 지난 1일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새로 조성중인 '장준하 공원'으로 이장하면서 37년 만에 고인의 유골 검시를 의뢰했다.

장 선생이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하산하던 중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될 당시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의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간단한 검안만 진행됐을 뿐 사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검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 실시된 검안에서도 동일한 머리 부위에서 가로·세로 2cm 크기로 흉기에 찍힌 상처가 발견됐고, 오른팔과 엉덩이 부위에서는 의문의 주사자국이 남겨져 있어 타살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경찰은 당시 사망 원인에 대해 "높이 14m의 낭떠러지에서 실족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암반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치고는 몸에 큰 외상이 없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후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을 조사했지만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번에 장 선생의 유골에서 결정적 타살 흔적이 재확인된 만큼 진상 규명을 위해 본격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장준하기념사업회는 보도 자료를 통해 "이 교수가 밝힌 두개골 오른쪽 귀 뒤쪽의 함몰 모양과 위치는 결코 추락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없다"며 정부에 전면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사진 = 장준하기념사업회 홈페이지 © News1 민지형 기자

한편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인 장준하 선생은 1960~70년대에 '박정희 체제'에 대항한 사상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대위로 항일투쟁을 했다.

그는 1953년 월간 '사상계' 등을 창간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한-일 수교 협상, 베트남 파병, 10월 유신 등에 맞선 다양한 정치활동을 벌였다. 특히 장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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