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이 낳은 불매·시위·고발…"정치권 공세가 이념 갈등 기폭제로"
유해진 집 앞 집회 신고 인증글…제작진 수사·출연진 불매도 촉구
"정쟁이 개인 의사표현 불붙여…SNS로 강경 주장 확산도"
- 신은빈 기자
(서울=뉴스1) 신은빈 기자
"역사 날조 영화에 나온 배우를 모델로 쓴 건 잘못입니다. 모델 교체될 때까지 불매하겠습니다."
2일 엑스 등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는 배우 유해진이 광고 모델인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불매 운동에 나서겠다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배우가 출연한 영화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배후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 출연 배우를 향한 비난과 불매 운동으로 옮겨붙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시작된 비판이 기폭제가 되면서 영화를 둘러싼 개인 간 대립과 이념 갈등으로까지 번졌다고 진단한다.
유해진이 광고하는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공식 유튜브 계정은 배우와 회사를 향한 악성댓글이 몰리면서 현재 모든 광고 영상의 댓글 사용을 중지한 상태다. 해당 프랜차이즈명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불매'가 연관 검색어로 가장 먼저 뜬다.
직장인 박 모 씨(29·여)는 "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요즘 역사 왜곡 논란으로 시끄러워서 해당 배우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보면 괜히 구매하기가 망설여진다"며 "개인적 소비가 자칫 정치적 사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배우의 자택 앞에서 영화 제작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신고했다는 인증 글도 발견됐다. 작성자는 개천절인 3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집회하겠다며 집회신고서를 첨부했다. 다만 해당 신고서가 실제로 접수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논란은 고발과 정쟁으로도 이어졌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29일 영화감독과 작가, 제작자 등을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온라인에서는 보수 성향 시민들을 중심으로 영화 제작진·출연진 상대의 전국민적 고발을 촉구하는 '국민 고발단' 모집글도 퍼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영화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 당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권의 메시지가 불을 붙였다고 진단한다. 정쟁이 개인의 정치적 의견 표출을 부추긴 데다 SNS를 통해 양강 구도로 대립하는 의견들을 자주 접할수록 개인 간 이념 갈등도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의견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비교적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메시지가 더욱 주목받게 된다"며 "영화에 대한 균형 잡힌 토론보다는 정치적 입장과 의혹을 늘어놓는 양강 구도의 갈등이 상황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다만 배우와 제작진을 향한 과도한 비난과 근거 없는 정보가 확산하는 것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1일 입장문을 통해 "작품을 둘러싼 논의가 작품 평가의 범위를 넘어 개별 창작자를 향한 공격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건강한 제작 환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비가 사회적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그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치권 공세가 개인의 이념 표출을 부추기자 영화 출연진의 광고 상품이나 추천 배우 등 직접적 관련이 없는 대상을 향한 '대리 불매'까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소비를 통해 가치관을 드러내려는 불매 행태가 정치적 의사 표현 수단으로 확산된 사례로 보인다"며 "특히 기존처럼 소비자가 먼저 시작한 바텀업(Bottom up) 방식이 아닌 정치권에서 출발해 개인으로 확산한 톱다운(Top down) 형태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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