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물 빽빽' 창고 구조가 키운 쿠팡 화재…"불연재·방화구획 제도화해야"

랙 구조에 박스 층층이…스프링클러도 무용지물

20일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압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6시 54분쯤 발생한 화재는 50시간 넘게 꺼지지 않고 있다. 2026.7.20 ⓒ 뉴스1 김진환 기자

(서울·인천=뉴스1) 신은빈 유준상 기자 = 인천 쿠팡물류센터에서 난 불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화재에 취약한 물류센터의 구조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깊숙한 공간에 가연물이 층층이 쌓인 구조에서는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지만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이 같은 대형 화재가 되풀이된다.

이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지만, 물류센터에서 한 번 난 불은 잘 잡히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화재 발생을 차단하거나 초동 진압이 용이한 구조로 건물 설계를 규정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6시 54분쯤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시작된 불은 이날까지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다. 소방은 전날 오후 11시 초기 진화를 목표로 삼았지만 아직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비닐·박스 가득, 선반 층층이…물류센터 대형화재 이유

물류센터에서 난 불은 통상 완진까지 수일이 걸리는 대형 화재로 번진다. 자칫 추가 화재나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2021년 6월 경기 이천 덕평 쿠팡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전소시킨 후 엿새 만에 완진됐다. 이듬해 1월 경기 평택 팸스 냉동 물류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는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이처럼 물류센터 화재 진압이 유독 어려운 이유로는 창고형 공간에 가연성 물질이 층층이 쌓인 특유의 구조가 꼽힌다. 인천 쿠팡물류센터 역시 층고 약 10m의 창고 안에 높이 8m 안팎의 3단 랙(선반)이 설치돼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랙마다는 생활용품과 종이상자, 비닐·플라스틱 포장재 등 불에 타기 쉬운 물품이 빽빽이 쌓여 있었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물류센터는 화재하중이 크기 때문에 불이 한 번 붙으면 오래 타고 잘 꺼지지 않는다"며 "다른 건축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차지하는 가연물의 발열량이 많아서 탈 것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국은 부지가 좁다 보니 최대한 많은 양의 물건을 적재하기 위해 랙 구조로 물류센터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큰 공간이 가연물로 꽉 찼다 보니 스프링클러가 작동해도 효과적으로 불을 끄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난 덕평 물류센터 화재 확산의 문제로 지목됐던 '메자닌 구조'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메자닌은 높은 층고를 활용해 한 층 안에 복층 형태의 작업·적재 공간을 설치한 구조를 뜻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19일 성명을 내고 이번 화재 역시 메자닌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3단 랙 구조가 건축법령상 메자닌에 해당하는지, 이 구조가 실제 화재 확대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일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압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6시 54분쯤 발생한 화재는 50시간 넘게 꺼지지 않고 있다. 2026.7.20 ⓒ 뉴스1 김진환 기자
높은 층고·깊은 공간에 초진도 어려워

초동 진압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화재 초기에 내부 발화점을 찾고 불씨를 꺼야 했지만, 물류센터 진입 난항으로 진화 속도가 더뎌지면서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허석경 인천서부소방서장은 "이번 화재는 6층 내부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걸로 추정된다"며 "창고형 건축물은 발화 지점이 안쪽일 경우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물 내부는 깊은데 통로가 좁다 보니 소방대원이 진입해 발화점을 찾기가 힘들고, 높은 층고와 샌드위치 패널(얇은 철제 안에 스티로폼이 내장된 마감재) 등으로 외벽이 막힌 구조로 스프링클러와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려도 진화 효과가 작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센터는 지게차가 물류를 원활히 나르도록 하기 위해 벽을 없애서 방화 구획이 제대로 안 돼 있다"며 "한 곳에서 불이 나면 전체로 번지기 쉽고, 공간 면적이 너무 넓으니 발화점에 소방대원이 접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 전 교수는 "그나마 바깥에서 물을 뿌리면 다른 곳으로 불이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발화점을 찾고 완진까지 이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32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압을 하고 있다. 한편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11시를 초진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다. 건물 전체의 붕괴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지만 내부 가연물과 바람, 복잡한 건물 구조 등 변수가 많아 실제 진화 시점은 더 늦어질 수 있다. 2026.7.19 ⓒ 뉴스1 김진환 기자
반복 화재 막으려면…"불연재·방화구획 제도화"

전문가들은 물류센터 화재의 대형·장기화와 반복을 막으려면 건물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조 재설계와 관련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벽면을 불연재로 구성하거나 내부 소화 설비를 좀 더 세밀하게 배치해 불이 커질 가능성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의무화하려면 이해관계자 등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소의 확대를 막아 줄 방화 구획을 편의상 생략한 물류센터 내부 구조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이 나도 크게 번지지 않도록 공간을 구분하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제 전 교수는 "물류센터는 물건의 적치·이동 편의를 위해 방화 구획을 안 한다. 현행 건축법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으면 3000㎡마다 구획을 하도록 의무를 완화하지만 물류센터는 그마저도 예외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며 "방화문을 설치하는 등 물류센터 방화 구획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be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