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운전 단속 강화되는데…농도·시간 기준 없어 전문가도 '혼란'
[약물운전 처벌강화] ③'운전 영향' 인관관계 입증 쟁점
약물별 등급 자료·코드 없어…"국가가 기준 제시해야"
- 권진영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강서연 기자 = 오는 4월 2일부터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하지만 당장 실무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 교통·의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다음달 2일부터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한 이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기존 법령보다 형량 상한선은 2년 높아졌으며 벌금 상한선은 2배로 올랐다. 여기에 측정 불응죄가 신설됐다.
문제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를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정의하냐는 것이다.
현재로서 약물운전은 음주운전 시 혈중알코올농도처럼 약물별로 약물운전이 인정되는 농도수치 및 시간 기준치가 없다. 가장 단속이 애매한 경우는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은 처방약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다.
도로교통공단에서 25년간 교수로 재직한 황준승 '교통과 사람들 연구소' 황준승 소장은 "약물을 먹었다고 무조건 약물 운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약물에 취해 운전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이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앞서 대한약사회 측에 약물운전에 해당하는 약물 490종 및 졸음 유발 약물에 대해 처방전에 붉은색 표기를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약지도를 강화해 달라는 취지다.
약사계는 복약지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자칫 약물운전의 책임이 약사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범진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약물 부작용, 문제점, 주의점은 처방하는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도 복약지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복약지도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다"고 했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총무이사는 "약사가 주의점을 알려줬다고 하더라도 막상 사고 났을 때는 '들은 바 없다'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도로교통법상 복약지도 불이행으로 인한 처벌 조항은 없지만 민사적 문제로 부메랑이 돌아올 소지는 있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정해진 약물 외에 졸음·어지럼 등을 유발하는 약물은 국가가 약물별 등급 자료와 기준 체계를 만들어야만 약사들도 수용할 수 있다. 제약·바이오사도 일반 의약품까지 포장에 주의 사항을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장 약국에서는 환자에게 나눠줄 복약봉투부터 고민이다.
처방전에 따른 복약지도 문구를 봉투에 표기하려면 '약물 코드'가 필요하다. 복약봉투는 약국과 연계된 보험 청구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쇄하는데, 식약처나 보건복지부가 선행적으로 졸음 유발 약물에 대한 코드를 부여해야만 프로그램상 주의 문구를 등록할 수 있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월 졸음 주의 약물 목록 390종을 추려 자체적으로 회원 약사들에게 배포하고 식약처 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약물 목록을 마련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 대한 식약처 회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별개로 경찰이 대검찰청·대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도로교통공단 등과 함께 개최한 '혈중 농도 기준 도입 및 운전금지 기준 검토' 회의는 이달 18일에야 시작됐다.
공신력 있는 기준 없이 일단 세지는 처벌 수위에 일각에서는 지병이 있는 환자들이 약 복용 자체를 꺼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 이사는 "약사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너무 애매하다"며 "처벌받을 수 있다고까지 얘기하면 약을 안 먹으려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운전사 등 장시간 운전이 필수적인 이들에게는 생업에 직결되는 문제다. 대한신경과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환자가 단속을 피하려고 뇌전증·불안 장애·통증 완화제 등의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면 오히려 질환 증상이 악화돼 도로 위에서 더 큰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환자의 체질·복용 기간·내성 여부에 따라 운전에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이므로 "약물 복용 여부와 운전 능력 저하를 동일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했다.
환자 개인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이 교수는 "(개정법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지 처벌이 아니다"라며 "주인공은 결국 나, 환자다. 스스로 방위 차원에서라도 과도기적으로 먹고 있는 약과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분이 있는지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벌이 강화된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환자 개인에게만 주의 책임을 부여할 수는 없다. 황 소장은 "경찰청에서 유관기관과 (농도) 기준을 구체화하려고 하지만 늦은 감이 있다"며 "법 시행에 대한 말이 작년부터 계속 나왔는데 이런 논의가 더 선행됐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경찰과 정부가 구체적 약물운전 단속 기준을 제시하기 전까지 현장에서의 혼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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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압구정 롤스로이스'·'반포대교 추락 포르쉐' 사고 등 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며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오는 4월 2일부터 처벌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약물의 종류와 복용 상황이 다양한 만큼 현장 혼란과 기준의 모호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뉴스1은 증가하는 약물 운전 실태를 살펴보고 일상 복용 약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등 제도 변화의 핵심 쟁점을 소개한다. 아울러 전문가 진단을 바탕으로 개정안의 실효성과 보완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