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증거인멸의 순간들

 박응진 사회부 사건팀장
박응진 사회부 사건팀장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증거인멸은 피의자가 증거가 될 만한 걸 감추거나 없애는 일을 말한다. 증거는 수사기관이 혐의를 입증하거나 법원이 유·무죄를 판단할 때 활용하는 핵심 수단이다. 반대로 피의자 입장에선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리고 싶은 애물단지일 거다. 증거가 사라지면 실체적 진실은 왜곡되고 만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을 뒤흔든 '공천 헌금 의혹'을 놓고도 증거인멸 정황들이 잇달아 포착되고 있다.

# 1. 강선우·김병기 의원은 경찰에 아이폰 휴대전화를 제출하면서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했다고 한다. 최신형 아이폰의 경우 보안성이 뛰어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사실상 안에 담긴 정보를 살펴볼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들은 휴대전화로 지역구 관리와 입법 활동 등 다양한 정치 행위를 지시·확인한다. 경찰 입장에서 두 의원의 휴대전화는 스모킹 건인 셈이다. 그러나 기술력의 한계로 잠금 해제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 2. 지난 2020년 강 의원에게 1억 원을 건넸다 돌려받은 김경 서울시의원은 지난달 31일부터 약 열흘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여러 차례 텔레그램 계정을 탈퇴했다 재가입했다. 증거인멸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뛰어난 메신저로, 계정 탈퇴 후엔 포렌식을 하더라도 대화 내역을 복구하기가 어렵다.

# 3. 경찰은 김 시의원의 PC 3대를 확보했는데, 이 중 2대의 하드디스크에선 포맷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 기기에 김 시의원의 '민주당 지방선거 경선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지원을 위한 종교단체 동원' 의혹 관련 자료가 담겨있었을 걸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김 시의원의 휴대전화 기기 교체 및 카카오톡 계정 탈퇴 의혹, 행방이 묘연한 김 의원의 금고 등 증거인멸 의혹이 차고 넘친다.

최근 주요 피의자들이 △"저는 제 삶에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왔다"(강 의원) △"충실히 조사를 받고 관련 증거를 모두 제출해 무죄함을 입증할 것"(김 의원) △"성실히, 책임 있는 자세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김 시의원)고 자신 있게 한 발언들에 비춰보면 분명 수상한 행적들이다. 경찰 조사 과정의 엇갈리는 진술은 증거인멸 의혹을 짙게 만든다.

공천 헌금 의혹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2022년이고 이들 의혹이 폭로된 게 2024~25년인 점을 감안하면 증거인멸은 예상보다 더 이른 시점에 시작됐을 수 있단 시각도 있다. 티끌만 한 증거 하나라도 더 모아야 하는 경찰 입장에선 등골이 서늘해질 말이다. 반대로 수사는 생물이라, 그 진행 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치명적인 진술이나 물적 증거가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다.

본인 사건의 증거를 없애는 건 처벌 대상이 아니다. 헌법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 사건에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거나 은닉·위조·변조한 경우에 적용된다. 그렇다고 이 의혹을 뒷전으로 미뤄선 안 된다. 구속영장 신청 등 신병 처리를 통한 수사의 연속성뿐만 아니라 수사 초기 때 빚은 '늑장·봐주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경찰은 증거인멸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