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말대꾸에 격분 흉기 휘두른 父, 한다는 말이…"연필깎이 그은 상처"

[사건의재구성] 재판부, 아버지에 징역 3년·집행유예 4년 선고
흉기 맞은 아들에 "화장실로 기어 들어가라" 폭행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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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너무 늦게 일어난 것 아니냐?"

지난 1월 6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가정집에서 아버지 A 씨는 늦게 방에서 나온 아들 B 씨를 이렇게 꾸짖었다. 사소한 지적에서 시작된 말다툼이었다. 그러나 곧 언성이 높아졌고, A 씨는 아들의 대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실랑이를 이어갔다.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A 씨가 양팔을 붙잡는 아들 B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자, B 씨는 아버지를 밀어 소파에 넘어뜨렸다.

"어릴 때부터 왜 자꾸 이러시는 거냐고요." B 씨가 소리쳤다.

자신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에게 격분한 A 씨는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그는 흉기를 챙겨 거실로 돌아와 "널 죽이겠다"면서 아들을 향해 휘둘렀다. 흉기에 맞은 B 씨는 더 찔리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몸을 끌어안았지만, 흉기를 든 A 씨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흉기에 맞아 주저앉은 아들에게 A 씨는 욕설을 퍼부었고 폭력을 이어갔다. "화장실로 기어들어가라"고 말하며 아들을 욕조 안으로 밀어 넣은 그는 샤워기를 틀어 얼굴에 물을 뿌리고, 플라스틱 의자를 들어 내려치기도 했다. 폭행은 1시간 30분 넘게 이어졌다.

B 씨는 아버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집 밖으로 달아나 옆 건물로 피신했다. 곧바로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웃 주민이 "남자가 흉기에 찔려 집으로 왔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들 부자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B 씨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에도 아버지의 강압적 언행으로 우울증을 앓다 결국 자퇴했다. A 씨는 또한 아들의 안정을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약 2년간 별거하기도 했다.

B 씨가 입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사건 직후 B 씨를 병원으로 호송한 소방관은 조사 과정에서 "상처를 보았을 때 칼날이 전부 들어간 것 같다"고 진술했다. 병원 응급의료센터 담당 교수도 "찔린 부위는 폐 쪽과 이어지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A 씨는 재판에서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체구가 큰 B 씨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자 겁이 나는 동시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흉기를 사용했다는 취지였다.

A 씨는 또 "고의로 찌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긴급한 의료적 조치를 취해야 할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변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범행 이후에도 중상을 입은 피해자를 가리켜 "연필깎이에 그어진 정도 상처인 줄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과연 피해자에 대하여 진정한 사죄의 뜻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질책했다.

A 씨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나상훈)는 지난 6월 24일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아버지에 의해 흉기로 수차례 찔리고 사경을 헤매게 된 이 사건 범행으로 심대한 신체·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점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일시금 및 향후 생활비 지급 등 상당한 금액의 합의가 이뤄진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점 △초범인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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