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뇌출혈, 암 걸려도 휴직 눈치…매일 경찰 5명이 다친다
[경찰이 쓰러졌다]① 매년 다치는 경찰관 2000명…공상 미승인 수두룩
인력 적어 병가 제때 못 써…유족 "암 진단 뒤 바로 휴직했다면" 눈물
- 김종훈 기자, 박응진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박응진 강서연 기자 =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두통이 너무 심했어요. 아내한테 119 좀 불러달라고 해서 살았죠. 안 그랬으면 저도…"
올해로 13년째 경찰관 생활을 하는 A 지방경찰청 소속 강재민 경사(가명)는 지난해 10월 출근길에 겪은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오전 8시쯤 평소처럼 집을 나서려던 순간, 이전엔 느껴본 적 없었던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강 경사는 본능적으로 119를 찾았다. 구급차에 몸을 실은 그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앰뷸런스에 탄 상태에서도 구토를 호소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이후 한 달 넘게 의식을 잃은 강 경사는 중환자실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보니 개두술을 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한 흔적만 있었다. 검사 결과 두통의 원인은 '뇌출혈'이었다.
과거 크게 아파본 적이 없었다는 강 경사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뇌출혈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외근이 잦은 부서에서 5년 넘게 근무했다. 맡는 일은 점점 많아졌지만, 인력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강 경사는 토로했다.
그는 "1인당 맡을 수 있는 업무에 관한 지침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매뉴얼'"이라며 "손이 부족해 인원 좀 늘려달라고 요청하면 '다른 부서도 다 힘들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 경사처럼 업무 중 병을 얻거나 다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경찰공무원 공무상 재해 청구·승인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평균 1910명의 경찰관이 공무상요양(공상), 순직유족급여(순직급여), 장해급여를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연도별로 보면 △2020년 2144명 △2021년 1551명 △2022년 1665명 △2023년 2150명 △2024년 2040명의 경찰관이 다쳤다. 올해 상반기(1~6월)에 다친 경찰관도 1098명에 달한다. 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치는 셈이다.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이 업무 중 다치거나 숨지면 공무원연금공단에 진단서 등 구비서류를 제출하게 된다. 연금공단은 사실관계를 검토한 뒤 국무총리 직속 인사혁신처로 이관하고, 이곳에서 심의가 이뤄진다.
인사혁신처 심의 과정에서 업무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경우와 공상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경우를 더하면 실제로 다친 경찰관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상을 승인받지 못한 경찰관의 공상 신청은 △2020년 221건 △2021년 178건 △2022년 182건 △2023년 288건 △2024년 429건이다.
특히 경찰관이 암에 걸린 경우, 공상 또는 순직급여를 승인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0~2025년(올해 6월까지) 모두 68건의 신청이 있었지만, 단 1건만 승인됐다.
이는 같은 제복공무원인 소방관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2020~2024년 소방관들의 공상 급여청구는 220건 중 122건이 승인돼, 55.5%의 승인율을 보였다.
병을 얻고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경찰관 또한 적지 않다. 15년간 경찰로 일하다 지난 202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최준서 씨(가명)는 암 진단을 받고도 8개월 이상 평소처럼 출근했다.
최 씨는 자신이 갑자기 휴직하면 겪게 될 경제적인 문제도 걱정됐지만, 인력이 부족한 팀에서 이탈하면 동료들이 겪을 부담이 더 신경 쓰였다. 누군가 질병이나 출산 등의 사유로 휴직하면 대체인력 충원 없이 남은 팀원들이 사건을 나눠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 씨 유족은 "2023년 3월부터는 몸이 정말 안 좋았는데도 출근을 했다"며 "당시 팀원 1명이 이미 휴직해 자기(최 씨)까지 빠지면 3명뿐이라 근무에 지장이 생긴다고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2023년 7월에서야 휴직에 들어간 최 씨는 이후 5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유족은 '조금이라도 빨리 쉬면서 치료에 전념했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최 씨의 부인은 "제일 아쉬웠던 건 아픈 사람이 쉬면 대체할 인원이 없다는 점"이라며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을 때조차 팀원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해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숨지거나 다친 경찰관이 매년 1000명이 넘지만, 끊이지 않는 범죄들과 각종 치안 수요로 인해 경찰 업무는 점차 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고소·고발 반려제 폐지 이후 업무 부담이 많이 늘어난 일선 경찰서 통합수사팀이 대표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6개월간 전국 경찰서가 접수한 사건은 61만 89000건으로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37.6% 늘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관계성 범죄로 대응 절차가 강화된 여성청소년과도 마찬가지다. 기존 수사부서에서 하던 피해자 보호 업무를 넘겨받은 데다, 인권 보호 강화 기조에 따라 과거보다 사건 처리에 세심한 접근이 요구돼 현장 경찰관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인력 충원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5년 이후 매년 전년 대비 1.4~3.6%의 경찰이 증원됐지만, 2023년과 지난해에는 0%대 증가율을 보였다.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는 2015년 456명에서 지난해 391명으로 줄었지만, 다변화하는 범죄 양상을 감안하면 여전히 경찰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게 경찰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archiv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칩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10명이 넘습니다. 공상·순직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치안현장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지키지만, 일을 하다 다친 경찰관은 정작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1>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과 유족들을 만나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습니다. 그 결과를 모두 7차례에 걸쳐 기사로 내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