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밟은 건 '가속 페달'일 수 있습니다 [박응진의 참견]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지난 13일 오전 10시 54분 부천시 오정구 제일시장에서 1톤 트럭이 갑자기 비좁은 시장 골목길을 돌진했다. 이 사고로 길에 있던 60∼7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60대 남성인 차량 운전자는 사고 직후 급발진이 의심된다고 주변에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9명이 숨지고 5명을 다치게 한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차량 운전자 차 모 씨(69)도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사고는 최악의 역주행 돌진 사고로 기록됐지만,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급발진 주장 차량 사고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부천 제일시장 사고와 시청역 참사는 액셀러레이터(가속) 페달 오조작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대법원에서 급발진이 인정된 사고 사례는 전무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020~24년 사이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 401건 중 341건(85%) 또한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판정됐다. 나머지는 차량이 크게 부서져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들 차량도 기속 페달 오조작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는 2029년 이후 제작되는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장착을 의무화 하는 규칙 개정안을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이를 통해 2029년 1월부터 국내에서 제작·수입되는 승용차, 2030년부터 3.5톤 이하 승합차·화물차·특수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장착이 의무화된다. 이 장치는 정지 상태의 차량 주변 1~1.5m 범위 내 장애물을 감지, 운전자가 급가속으로 페달을 밟아도 출력이 제한되도록 설계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엔 운전자의 주행 의도를 기계가 온전히 이해할 순 없기 때문에 이 장치로 급발진 주장 사고를 100%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가 의무화 되기까지는 아직 3년 넘게 남아있고 이 또한 완벽한 대책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현재는 가속 페달 오조작 예방을 위한 운전자 개개인의 의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아 발생한 오조작 사고는 보통 그 피해가 경미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과 함께 세간에 알려지기 쉽다. 이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브레이크(제동) 페달을 밟았다고 착각하는 배경 중 하나다. 급발진이라는 용어를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다보니, 자신이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은 뒤 차량이 돌진하면 그 순간 자신이 엔진 결함이나 고장에 의한 급발진 상황에 놓여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엔진 결함이나 고장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지만, 결함·고장 없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반드시 차량이 멈추게 돼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언론을 통해 알져지지 않는다.
박성지 대전보건대 경찰과학수사학과 교수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차량을 앞으로 못나가게 하는 제동력은 차량이 앞으로 가려는 힘보다 훨씬 세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차량이 못나간다"고 말했다.
운전자들이 급발진 프레임에서만 벗어나도 관련 사고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이런 상황이 닥치면 운전자들은 1분이 넘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가속 페달만 밟는다"면서 "운전자들에게 자신이 밟은 건 가속 페달이라는 인식만 심어주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발을 브레이크 페달로 옮겨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봤다.
그는 "페달 오조작 사고가 비교적 적은 나라들에선 페달 오조작이란 조사 결과가 사고 직후 보도된다. 그래서 사람들도 그런 사고가 나면 급발진보단 '페달을 잘못 밟았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여론이 형성돼 있으니 운전자가 실수로 가속 페달을 밟아도 곧바로 제동 페달을 밟아 관련 사고도 적다"며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한 채 급발진 주장만 싣는 언론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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