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어떤 유족도 온전히 슬퍼할 수 있으려면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 1500만 원. 딸과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 여성이 만취 음주 운전 차량에 숨진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드는 비용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왔던 딸은 1500만 원이란 금액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슬퍼하기도 촉박한 시간에 피해자 유족에게 큰 짐이 지워진 셈이다.

한국 언론의 관심이 높고 일본 현지에선 분노가 컸다. 이런 분노 어린 여론 속에 가해자는 피해자의 시신 운구비용 1500만 원 지급 의사를 피력했다. 피의자가 변호인을 구한 후 구체적인 운구 방법 등을 피해자 측과 협의할 것이란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혜화경찰서는 통역사를 고용해 소통하고, 일본어에 능통한 교통경찰관 1명을 피해자보호 전담 경찰관으로 지정해 장례 절차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음주 운전 가해자는 현행범으로 체포해 9일 만에 구속 송치했다.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것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선 외국인 피해자가 범죄의 피해를 봤을 때 지원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망할 경우 지원 절차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는 없다. 사안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를 위해 '범죄피해자 보호법'을 두고 있다. 생명 또는 신체를 해하는 범죄로 사망, 상해,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국가가 구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외국인 피해자에 대한 규정은 제한적이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23조는 △해당 국가의 상호 보증이 있는 경우 △대한민국 국민의 배우자이거나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 관계(사실상의 혼인 관계를 포함)에서 출생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자로 적용 대상을 한정한다.

무엇보다 현행법상 교통사고 등 과실 범죄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범죄피해자 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보다 많은 범죄피해자에게 구조금을 지급하도록 법 개정을 권고했으나, 법무부는 "과실 범죄는 대부분 보험제도에 의해 피해가 보장되고 있고 고의범죄에 비해 국가의 범죄예방책임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사실상 거절 의견을 회신했다.

결국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외국인 유가족은 타국에서 통역사를 구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말이다.

과실 범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사회적 참사에서도 외국인 피해자들은 피해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는 외국인 희생자 유족에게 장례 비용 최대 150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참사 약 9개월 후 언론을 통해 이란 유가족에게 장례비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외국인 피해자들의 유족은 그저 답답한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가족의 사망과 관련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였다.

노르웨이 국적 희생자 스티네 에벤센의 아버지 에릭 에벤센은 "이것이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절차인지 궁금하다"며 "왜 우리 딸의 시신이 방부 처리된 채 왔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나라에서 가족을 잃은 외국인 유가족은 온전히 슬퍼하기도 힘든 셈이다.

국가는 범죄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인권위는 법무부에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하며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고 있고 국가에 범죄예방의 책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범죄 피해를 본 외국인도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가 모든 비용을 책임질 수 없다면 최소한 상황에 따른 절차라도 명확히 정해둬야 한다. 가해자 의사나 어떤 언어를 쓰는지에 따라 애도할 시간이 달리 주어져선 안 된다.

kit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