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험지만 100장"…'12시간 외로운 수능' 치른 시각장애 수험생들

5명 응시한 서울맹학교…학부모 "하루종일 본 시험, 수고했어"
"잘 치길" 졸업생 응원도…수능 끝낸 수험생 "가서 자고 싶어"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인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 앞에서 학부모와 졸업생이 수험생을 기다리는 모습. 2025.11.13/뉴스1 ⓒ News1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국어 시험지 하나만 해도 100장이 넘어가는데...수고했단 말 외에 더 필요한 말이 있을까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13일 오후 8시쯤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 앞에서 강민정 씨(55·여)는 이같이 말했다. 비장애인 수험생들이 이미 4시 38분경 시험을 끝내고 저녁을 먹을 시간, 이곳에선 여전히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서울맹학교는 빛을 전혀 지각하지 못할 정도로 시각에 장애가 있어 점자로 시험을 치르는 전맹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고사장이다. 확대경으로 시험을 치르는 저시력 장애인은 여의도중학교에서 수능을 치른다.

시험 종료를 앞두고 60~80여명의 가족들이 몰렸던 다른 고사장들과는 달리 오후 8시 서울맹학교 앞엔 학부모 강 씨 1명과, 이 학교 졸업생 허재혁 씨(21·남)만 있었다.

이날 서울맹학교에서 시험을 치기로 했던 수험생은 7명이었지만, 결시생 2명이 생겨 총 5명이 수능을 봤다.

강 씨는 "수험생인 아들이 쌍둥이인데, 한 명은 이미 수능이 끝나서 저녁을 먹였다. 남은 아들을 데리러 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본인의 운도 따라야 하겠지만, 시각장애인은 모의고사만 봐도 하루 종일 봐야 하니까 시험 보기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강 씨는 "외로운 시험"이라 덧붙였다.

시각장애 수험생의 시험 시간은 비장애인의 1.7배에 달한다. 제2외국어를 응시하지 않더라도 오후 8시 15분에 종료되고, 제2외국어를 응시하면 오후 9시 48분 시험이 끝나 거의 13시간 동안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지 분량도 많아 비장애인보다 더 큰 집중력을 요한다. 시각장애인의 수능 시험지는 국어 영역의 경우 100쪽에 달한다. 비장애인 수험생의 문제지 16쪽의 6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날 후배들을 격려하러 왔다는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과 1학년 허재혁 씨는 "너무 오랫동안 시험을 붙잡고 있어야 하니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다"며 "후배들에겐 그래도 시험이 끝나면 1년 정도는 편하게 놀 수 있으니 시험을 잘 치고 오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허 씨는 지난해 서울맹학교에서 수능을 봤고, 현역으로 서울시립대에 입학했다.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인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 앞. 2025.11.13/뉴스1 ⓒ News1 신윤하 기자

오후 8시 15분이 되자 학부모가 수험생을 데리러 갈 수 있도록 교문이 열렸다.

시험지를 걷고 수능이 완전히 끝난 8시 25분쯤 어머니 강 씨와 함께 학교를 나온 한동현 군(18·남)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한 군은 "평소에 영어 과목을 잘했었는데 이번엔 좀 어렵게 본 것 같지만, 국어는 평이하게 9월·6월 모의고사와 비슷했던 것 같다"며 "사회탐구 선택한 이과생들이 많아져서 변별력 있게 문제를 낸다고 했었는데 아주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한 군은 12시간에 달하는 시험 시간에 대해선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는데, 전부터 모의고사를 통해 대비를 해왔다 보니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가서 좀 자고 싶다"고 했다.

한 군은 "경희대를 희망하고 있다"며 "수능이 끝났으니 느슨하게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후 8시 40분쯤엔 다른 학교에서 수능을 친 학생들도 본인이 재학 중인 서울맹학교로 돌아왔다. 수험생들은 후련하단 표정으로 웃었다. 선생님들이 "수고 많았어. 맛있는 것 주문해서 먹어"라고 하자 수험생들은 "알겠다"며 까르르 웃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