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대학 간다" 78세 할머니의 수능 도전…만학도 후배들 응원
"남동생 가르친다고 고교 못 가서 날마다 울기도"
수능 날 점심 도시락은 '소시지, 깻잎장아찌, 더덕무침'
- 한수현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한수현 강서연 기자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정문 앞. 약 20명의 '만학도' 후배들이 양쪽으로 길게 서서 내일 수능을 치르는 선배들을 맞이하며 큰 목소리로 응원의 구호를 외쳤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일성여중고 후배들은 '행복한 만학도 여고생', '엄마도 대학 간다', '술술 풀려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일성여중고는 어린 시절 개인 사정으로 인해 제때 학업을 끝맺지 못한 30대~80대 여성 만학도들이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 인정 평생학교다.
올해 일성여중고 재학생 중에는 60명이 수능을 치른다.
이날 일성여중고에서는 수능을 하루 앞두고 선배들을 향한 후배들의 응원 행사와 수능 관련 유의 사항을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학교 복도에서부터 행사가 열리는 다목적실까지 뜨거운 응원이 이어졌다. 후배들은 형형색색의 응원 도구를 들고 위아래로 흔들며 입장하는 수험생 선배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응원 구호에 맞춰 "축하해요"라며 손뼉을 쳤고, 수험생인 선배들은 "파이팅"이라며 화답했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영림 씨(77)는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만회하시고, 행복만 찾으시고 꿈도 이루셨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수험생들이 모두 입장하자 일성여중고 교사는 수능 관련 유의 사항을 안내했다. 그는 "(수능) 시작 전 감독관이 고사장 안에서 스마트기기를 수거한다"며 "돋보기를 사용하실 분은 매시간 감독 선생님께 돋보기 사용을 허가, 사전 점검받고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돋보기, 혈당 측정기, 보청기 등 모든 것을 사전에 감독 선생님께 허락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며 "시험 중 허리가 아파 일어나시는 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교사가 "모자를 쓰고 가면 안 된다"며 "매시간 모자 안을 점검할 것"이라고 하자 웃음을 터트리는 수험생도 있었다.
유의 사항 안내를 마치고 교사는 각 수험생에게 수험표를 배부했다. 가장 먼저 수험표를 받은 수험생은 최고령인 서해숙 씨(78)였다. 서 씨는 단상으로 올라와 수험표를 두 손으로 받아쥐었다.
교사는 내일 수험장에 수험표를 꼭 지참해야 한다고 재차 당부했다. 교사가 "학부모라고 오해할 수 있다"며 "당당하게 손을 들고 '나 수험생이다'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자 수험생들은 교실이 울리도록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최고령 수험생인 서 씨는 "그동안 공부했던 실력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풀고 와야 하는데 많이 떨린다"고 말했다.
서 씨는 "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3년 내내 반장도 하고 장학금을 탔었다"며 "남동생을 가르친다고 고등학교를 못 가서 날마다 울고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공부하면서 모르는 것도 많이 알게 되고, 여기(학교)를 안 왔으면 지금 이렇게 행복하고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살았겠다 싶어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 씨는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한다고 밝혔다. 서 씨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기가 쉬울 것 같다"며 "그동안 잘 참고, 잘 견딘 나에게 '계속 영원히 공부를 잘하자'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의 응원과 유의 사항을 들은 일성여중고 수험생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예비 소집이 진행된 수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모두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홍익대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른다.
수험장에 도착한 수험생들은 수험표와 고사장 배치도를 분주하게 번갈아 보며 자신의 고사장을 찾았다. 수험장과 고사장 배치도를 배경으로 수험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수험생도 있었다.
수험생 유금선 씨(78)는 "끝까지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며 "신경 쓰느라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오늘 잘 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에 거주한다는 김보배 씨(77)는 "수험장까지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와야 한다"며 "4년 동안 학교도 다녔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60대 이 모 씨는 "저녁에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인 한국사를 조금 더 훑어 볼 예정"이라며 "점심 도시락은 간단하게 소시지, 깻잎장아찌, 더덕무침을 싸 올 것"이라고 밝혔다.
sh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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