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자식 잃은 기일에도 '2차 가해' 댓글 다는 사람들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혐오·모욕성 내용으로 2차 가해 우려가 커진 뉴스 댓글 창에 대한 일시 중지를 요청합니다."
이태원 참사 3주기 며칠 전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3주기 시민추모대회인 10월 25일부터 핼러윈 당일인 31일까지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엔 댓글 창을 닫아달란 내용이었다.
뉴스1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7일간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의 댓글 창을 닫기로 했다. 사회부 사건팀은 유가족의 요청을 데스크에 공유했고, 데스크도 댓글 창을 닫는 것에 동의했다.
기자들은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를 작성하고 나면 기사를 송고하는 데스크에 댓글 창을 닫아달라고 요청했다. 기사를 올릴 때마다 제목에 '댓글 창 X'라는 문구를 넣어 댓글 창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데 아차.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 종합 기사를 올리던 중 오전에 송고된 기사의 댓글 창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기사를 올리다가 댓글 창을 닫아달라고 요청하는 걸 놓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댓글 창은 30분 남짓 열려 있었는데 그 사이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 악플은 이미 50여개가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유가족이 댓글 창을 닫아달라고 한 것이었구나. 바로 댓글 창을 닫도록 조치했지만 그날 하루 종일 죄책감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많은 참사가 일어난 날 중 하루일 수 있겠지만, 유가족에게 29일은 하나뿐인 자식을 하늘로 보낸 날이다. 누군가의 기일에도 기사 댓글 창에 접속해 아득바득 '자식 팔이'니, '놀러 갔다 죽었다' 등과 같은 희생자생자·유족에게 모욕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이 참사 3년이 지난 2025년에도 많았다.
참사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는 3년간 방치돼 왔다. 분향소 앞에서 혐오 발언을 하는 우익 단체뿐만이 아니었다. 공직자조차 혐오발언에 가담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을 올렸다가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참사에 책임이 있는 국가가 먼저 애도하지 않으면 국민 개개인도 애도하지 않는다. 박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애도와 공감은 당연히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학습해야 하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기관들이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공감한다는 결과물을 계속 보여주고 주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국가는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한층 진일보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올해 기억식은 참사 발생 후 처음으로 정부가 유가족과 합동해 개최한 추모행사였다. 대통령이 추모사를 보내고,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가 참석한다는 형식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유가족과 함께 애도하고, 정부에게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단 걸 인정하는 의미기도 했다.
특히 기억식에 앞서 정부는 합동 감사를 통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 발생 및 대응에 영향을 줬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누군가가 말하듯 '피해자가 이태원에 놀러 가서' 참사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필요한 곳에 안전을 보장해야 했을 국가가 부재해서 일어난 것을 인정한 것이다.
남은 것은 유가족과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직접적으로 제재하는 것이다. 경찰청이 지난 7월 19명 규모의 2차 가해 범죄수사팀을 신설했지만 유족들은 피해자가 직접 수사 요청을 해야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수사를 위해선 피해자가 직접 2차 가해 댓글들을 수집해서 상처를 후벼파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가 진행돼도 김 의원의 사례처럼 솜방망이에 그치는 점도 문제다.
2차 가해 방지를 골자로 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9일 2차 가해 방지 등 내용이 담긴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아니라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sinjenny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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