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 속수무책인데도…'방재 사각지대' 놓인 문화유산
국보·보물 아니면 화재감지기·옥외소화전 설치 의무 없어
"문화재 보호 예산은 비용 아닌 투자…예산 투입해야"
- 권준언 기자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지난 3월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해 문화 유산 35건의 피해로 이어졌다. 약 3개월 뒤인 6월 30일에는 서울 성북구 소재 문화유산인 '성북동 별서' 내 송석정이 화재로 반소됐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 전소를 계기로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 지 20년이 지났으나 많은 문화재가 여전히 '방재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국보·보물로 지정된 목조 문화유산에만 옥외소화전과 자동화재속보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보·보물에 해당하지 않는 사적·명승 등에는 설치 의무가 없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5월 30일 발간한 '산불 등 화재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보·보물이 아닌 문화유산 304곳 중 옥외소화전은 83.9%(255곳), 자동화재속보설비는 85.9%(261곳)에 설치돼 있다.
의무 설치 대상인 국보·보물 244곳의 경우 옥외소화전 설치 비율이 92.6%(226곳), 자동화재속보설비는 91%(222곳)이다. 국보 21곳은 모두 설치가 완료됐다. 의무 설치 대상과 그렇지 않은 문화유산 간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화재가 발생한 성북동 별서는 국보·보물이 아닌 '명승'에 해당한다. 화재 당시 건물 외부엔 옥외소화전이 있었지만 전기가 연결돼 있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고, 송석정 내부에는 별도의 소방 설비 없이 수동 소화기만 비치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실화 등의 결정적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 폐쇄회로(CC)TV 또한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국내 문화유산 2790곳 중 CCTV가 설치된 곳은 절반이 조금 넘는 1550곳에 불과하다.
성북동 별서 화재 당시에도 내부에 CCTV가 없어 소방 당국이 성북구청에 CCTV 영상을 요청했지만 통신망이 연결되지 않은 '먹통' 상태였기에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정책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문화재 실태에 맞는 방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에서 문화재 보호에 드는 예산은 비용이 아닌 투자"라며 "문화재는 역사적 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때문에 제도 개선은 물론 예산 확보를 통해 대부분의 문화재에 대한 화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상향방수식 수막시설을 설치해 산불 확산을 차단하고 있다"며 "보존상의 이유로 문화재에 배관 설치가 어렵다면 가스계 소화설비 등을 대안으로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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