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낭만적인 '조폭'은 없다 [김민수의경찰본색]
-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서울청 형사기동대가 올해 8월 '신남부동파' 검거 결과를 발표한 날, 브리핑룸 스크린에는 낯익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야유회에서 문신한 남성들이 웃고 결혼식장에서 도열해 인사하며 이탈자를 쫓아가 폭행하는 장면이었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신남부동파의 뿌리는 1980년대 영등포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차례의 와해와 단속 끝에 최근 다시 세력을 규합한 이들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를 끌어들였다. '싸움을 잘하면 자격이 있다'는 식의 선발 기준, 합숙소에서 진행된 처세 교육, 편지 문안까지 규정한 행동강령은 고전적인 폭력조직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했다.
교도소에서는 신입 조직원을 물색했고 결혼식장에서는 조직원들이 병풍처럼 도열해 굴신 인사를 올렸다. 이탈자는 폭행당했고 보복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직원 절반 이상이 최근 5년 내 영입된 인물이었다. 84%가 20대였고 10대 고등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의리'와 '형님 문화'에 끌려 들어왔지만 곧 강요와 폭행, 착취 속에 눌려 살았다. 조직은 보호비 명목으로 유흥업소·보도방 업주에게 금품을 요구했고 주차대행이나 주주총회 현장 등 이권이 있는 곳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폭력의 서사는 그대로였다.
올해 9~10월 재개봉한 영화 대부(The Godfather)는 마피아를 낭만적으로 포장한 듯하지만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그 낭만을 해체했다.
한 남자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며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대부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았다. 바로 그 비극이 이 작품을 고전으로 만들었다.
대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직의 '대부'가 된다. 집무실 문이 닫히고, 그 문을 바라보는 아내의 착잡한 표정으로 영화는 끝난다. 권력을 얻었지만 인간성을 잃은 남자, 닫힌 문 뒤엔 낭만이 아닌 공허만이 남는다.
그리고 올해 추석 연휴 한국 극장가에는 영화 보스가 등장했다. 전형적인 추석용 조폭 코미디였지만 보스를 서로 떠넘기는 인물들의 모습이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하고 있다. 보스는 폭력의 세계가 시대의 뒤편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풍자한다. 대부가 폭력의 비극을 기록했다면 보스는 그 폭력의 소멸을 희화화했다. 영화와 드라마는 허구의 영역에 있지만 사회상을 반영한다.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클래식'한 폭력단체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뉴스1을 포함한 언론사들의 신남부동파 관련 보도를 두고 '선정적 보도' 결정을 내렸다. 문신 노출과 '옥중처세술' 설명, 흉기 사진이 혐오감과 모방 충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조직폭력의 실체는 감춰야 할 장면이 아니라, 사회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폭력을 낭만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기록까지 '유해'로 분류하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문신과 흉기, 그리고 '처세술'은 그들이 만든 세계의 상징이다. 그 장면을 보여주는 일은 잔혹함을 드러내는 일이지, 결코 찬양이 아니다.
폭력의 실체를 숨기면 폭력은 더 은밀해진다.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사회가 폭력과 싸우는 첫 단계다.
신남부동파 재건 사건은 조폭의 낭만이 사실은 허상이었고 남은 것은 폭력과 두려움뿐이라는 점을 환기해 준다. 그런데도 언론이 그 현실을 보여주는 일조차 선정적이라 비판받는다면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
브리핑룸의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 속 문신과 흉기는 사라졌지만 취재 메모장에는 여전히 그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선정적이라 부르겠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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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화 '영웅본색'의 팬 사회부 사건팀 김민수 기자가 '경찰본색'을 연재합니다. 본색이란 본디의 색깔이나 정체, 특색을 말합니다. '경찰본색'은 범인을 잡고 시민을 지키고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경찰다움'을 의미합니다. 창설 80주년을 맞이한 경찰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