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까지 조작된 해외입양 75년…'로스트 버스데이'에 담긴 의미

진실화해위 '로스트 버스데이' 다큐 영화 시사회
신원 바꿔치기·기록 조작의 역사…"국가가 사과해야"

16일 '로스트 버스데이' 시사회에 참석한 관람객들(진실화해위 제공)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입양인'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사실 올바르지 않죠. 이들은 강제로 가족으로부터 떨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50여년 전 생후 3개월 만에 덴마크의 한 부부에게 입양된 한분영 씨(51·여)는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로스트 버스데이'(Lost Birthday)를 관람하고 이같이 말했다.

한 씨는 양부모의 외동딸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고 태권도 덴마크 국가대표로도 활동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한 씨는 2002년 한국으로 돌아와 입양인들의 쉼터인 '뿌리의집'에서 해외 입양인들을 돕고 있다.

한 씨처럼 제각기의 사연을 갖고 있는 해외 입양인들이 16일 서울 중구 명동 CGV에서 열린 '로스트 버스데이' 시사회에 참석했다.

로스트 버스데이는 입양 동의 부재, 기록 조작, 의도적 신원 바꿔치기, 후견인 직무 미이행,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등으로 얼룩진 75년간의 해외입양의 조직적인 아동매매 시스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2022년부터 조사한 기록을 담고 있다. 약 1년 동안 미국, 덴마크, 프랑스 등 현지 취재와 국내외 촬영을 거쳐 영화를 제작했다.

'잃어버린 생일'이란 뜻의 영화 제목은, 입양기관이 입양 서류를 조작해 본명과 출생지, 의료 기록까지 뒤바뀌어 자신의 생일조차 알 수 없는 해외 입양인들의 현실을 반영했다.

30년 만에 친가족과 만난 이바 호프만은 영화에서 "입양 서류에는 고아라고 돼 있었지만, 가족들이 나를 30년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선천적 장애라 믿고 살았던 니아는 "의료진의 잘못된 백신 접종이 원인이었다"며 조작된 의료기록의 실상을 폭로했다.

실제로 한국전쟁 중 혼혈아동을 대상으로 시작된 해외입양은 입양 희망자가 늘어나면서 대리입양 시스템과 대량 전세기 운송 방식으로 산업화됐다. 이후 미국, 프랑스, 유럽 각국으로 해외입양이 본격화되면서 비공식 추산 20만 명 넘는 한국 아이들이 세계 각지로 보내졌다.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 제정 이후에는 입양이 체계화됐으나, 아동의 권리는 방치됐다. 입양기관들이 해외입양 부모들의 수요에 맞춰 아동을 '공급'하기 위해 서류 조작과 바꿔치기를 서슴지 않은 정황이 다수 발견된다.

허상수 진실화해위 비상임위원은 영화 관람 후 "해외 입양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명백한 범죄 행위이고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아동의 강제 이동과 관련된 국제적인 사건"이라며 "이승만·박정희 정부에 크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영화는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앞서 1964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에서 해외 11개국으로 보내진 해외 입양인 367명이 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조작돼 정체성을 알 권리가 침해당했다며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그중 56명이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