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관계성 범죄'로 쓰러지는 여성…"교제폭력 규정 서둘러야"
지난 4년간 교제폭력 꾸준한 증가세…지난해만 8만 8000건 넘어
교제폭력 관련 규정 부재…전문가 "위험성은 같은데 보호조치 無"
-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김종훈 기자 = 최근 전국에서 평소 알고 지내온 이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숨지거나 다치는 여성이 속출하자 수사기관에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관계성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법률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으로 인한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세다. 교제폭력 신고는 △2021년 5만 7305건 △2022년 7만 790건 △2023년 7만 7150건을 기록하다 지난해 8만 8394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통계뿐 아니라 실제 사건도 이어지며 '관계성 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2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3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람은 동거한 연인 사이였는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던 도중 범행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 하루 전인 28일에는 울산에서 여성이 쓰러졌다. 울산 북구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 20대 여성이 이별을 통보받아 화난 30대 남성에게 습격을 당해 크게 다쳤다.
같은 달 26일에는 노인보호센터 직원인 50대 여성이 전 직장동료인 60대 남성에게 흉기로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피의자는 범행 전 세 차례나 스토킹 혐의로 신고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수사기관도 사건 처리 개선 방안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공언했지만, 그 근거가 되는 법률이 바뀌지 않은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을 규정한 법률이 없어 발생하는 사각지대다.
관계성 범죄 중 가정폭력이나 스토킹과 달리 혼인하지 않은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은 별도의 규정이 없다. 수사기관은 일반 사건처럼 형법상 폭행·협박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교제폭력에는 스토킹범죄에 적용할 수 있는 '응급조치',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이마저도 현장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경찰의 개입 자체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흉기를 들거나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수준이 아니고 신고자까지 처벌을 불원하면 나서기 어렵다"며 "몸에 상처가 있으면 분리까지는 경찰이 강제로 할 수 있지만 그것조차 없으면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교제폭력을 별도 법률로 규정하거나 스토킹처벌법 등에 관련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고은 법률사무소 진서 변호사는 "(교제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보호조치가 별도로 없다는 것"이라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성은 존재하는데, 그에 대응하는 보호조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스토킹과 관련한 조치 승인을 심사하는 법원도 위험성을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6일 검찰·경찰·법무부·여성가족부 관계자가 모여 검·경 실무협의회를 열고 스토킹 범죄 대응을 논의했다.
해당 협의회에 법원은 별도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 변호사는 "보호조치와 관련해 수사기관 외에도 이를 판단하는 법원에도 주체적인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며 "이 협의회에 법원이 들어가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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