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와도 콘서트 못 들어가"…팬 생기부까지 요구하는 '본인확인' 갑질

데이식스 팬 미팅 잡음…신분증 지참해도 "생활기록부·금융인증서 떼와라"
현행법상 암표 불법 아닌데 소비자만 '잡도리'…"삼류 업무처리"

18일 브루노 마스의 내한공연이 열리는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앞이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그래도 못 들어갑니다."

지난 19일 오후 인기 밴드 '데이식스'의 팬미팅 공연이 열리는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앞에서 진아영 씨(가명·18·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진 씨의 '본인 확인'을 위해 경찰관이 공연장까지 동행해 줬음에도 공연 관계자가 입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초 진 씨는 티켓 예약자가 본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신분증으로 '학생증'을 들고 갔지만 입구에서 거절당했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적힌 학생증은 수능 신분증으로도 사용되는 만큼 본인 확인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공연 관계자는 청소년증이나 여권의 실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서를 찾아 자신의 신원확인을 해줄 수 있냐 물었다. 경찰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사정이 딱하다며 도와주겠다고 했고, 주민등록번호 등을 이용해 진 씨의 신원 확인을 진행한 뒤 공연 관계자에게 "본인이 맞는데 들여보내 주면 안 되겠냐"고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진 씨는 결국 이날 팬미팅에 들어가지 못했다. 팬 멤버십 가입 비용 3만 원, 팬미팅 가격 8만 8000원, 교통비 8만 5000원 등 20만 원이 넘는 돈과 시간을 날린 셈이다.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도 다쳤다.

진 씨는 "경찰이 신원을 확인해 주는 것보다 정확한 본인확인이 어디 있냐"며 "팬들의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악용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식스가 17일 오후 인천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아 그랜드 뮤직 어워즈(2024 KGMA)'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11.17/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소속사는 관객 보호라는데…주민등록증 보여줘도 금융인증서·생기부까지 요구

2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가수의 공연에 입장할 때 티켓 예매자와 실 입장인의 명의가 같은지 확인하는 '본인 확인' 절차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주최사 측이 본인 확인을 위해 요구하는 소비자의 개인정보들은 사전 동의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임의적이다. 데이식스 팬미팅의 경우 주최사 측은 진 씨의 경우처럼 관공서의 신원 확인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속사 측이 공지한 실물 신분증을 들고 가도 금융 인증서와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심지어 학생생활기록부 열람 등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 모 씨(24·여)는 19일 데이식스 팬미팅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민등록증을 지참했지만 공연 관계자는 "주민등록증 얼굴과 지금 얼굴이 다르다"며 카카오톡 인증서를 요구했다. 인증서를 보여줬지만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갑자기 가져간 뒤 카카오톡 내 전자 증명서와 학교 생활기록부 등을 떼보라고 요구했다. 관계자는 이 씨의 생기부를 보고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이름이 뭐냐" 등 질문을 하고, 얼굴의 어떤 부분이 신분증 사진과 다른지 말씨름하기도 했다.

공연 관계자는 결국 오프닝 무대가 끝난 오후 6시 10분쯤 이 씨를 공연장에 입장시켰다. 이 씨는 "어떻게 보상할거냐"고 따졌지만, "본인이 본인 확인 서류를 정확히 준비하지 않아서 늦은 거라 보상할 수 없다"고 오히려 성을 냈다. 하지만 관계자의 말과는 다르게 이 씨는 소속사 측이 사전에 공지한 실물 신분증인 '주민등록증'을 지참한 상태로, 준비에 미비한 점은 없었다.

이 씨는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마음을 을(乙)로 잡아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력을 휘두르는 게 정말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좋아하는 가수를 보려고 시간과 돈을 쓰면서 왔는데 돌아오는 게 이런 대우여서 솔직히 실망도 많이 하고 화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된 후 데이식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21일 오후 공식 사과문을 내고 "관객분들을 보호하고자 함이었으나, 이번 사안에서는 유연한 대응과 관리 책임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과도한 본인 확인 절차로 인해 공연에 입장하시지 못한 관객분들께 티켓 환불 보상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X(구 트위터 갈무리)
"본인 확인 없애주세요" 대규모 연서명 등장…암표 근절 책임 소비자에 전가

과도한 본인 확인은 비단 특정 가수와 소속사의 문제는 아니고, 아이돌 산업에 팽배한 문제다. 지난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X(구 트위터)에 국민의 현장감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글을 올리자, '아이돌 콘서트 본인 확인 없애주세요'란 인용 글이 달렸고 1만 3000개의 공감을 얻었다.

한 누리꾼은 본인확인으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대규모 연서명을 벌였고, 지난달 27일 기준 4266명이 참여했다. 이 누리꾼은 지난 20일 자신의 X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연서명과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팬들의 반발에도 본인 확인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공연 주최사 측은 본인 확인을 하는 이유로 '암표 근절'을 댄다. 암표 시장이 커지면서 프리미엄을 붙인 티켓 재판매 및 불법 양도 등이 많아지니, 이런 문제를 본인 확인을 통해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티켓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한 암표상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본인 확인으로 암표를 근절하겠다는 주최사의 발상은 결국 소비자에게만 책임을 지운다. 돈을 낸 팬들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신분증 사진을 찍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는 등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을 하고 인권 유린에 가까운 갑질을 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데이식스 팬미팅에 들어가지 못한 진 씨는 "JYP는 데이식스 팬미팅 관련 입장문에서 '암표 때문에 본인 확인을 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암표를 없애려면 '매크로'(자동 입력 프로그램)나 업자를 잡아야지, 본인 확인은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라며 "암표를 사서 결국 공연장에 들어오는 것은 팬들인데, 또 입장문에서 팬들 탓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JTP엔터테인먼트 입장문과 이에 대한 누리꾼 반응. X(구 트위터 갈무리)
팬 '본인 확인' 암표 근절 대책 될 수 없어…"나이 어린 팬 무시, 업무 처리 삼류"

사실 현행법상 매크로를 이용하지 않고 웃돈을 붙여 판 암표는 불법도 아니라 소비자들을 처벌할 근거도 없다. 현행법상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매매에 대해서만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티켓 재판매 시장을 양성화해서 적절한 가격대로 관리하는 게 낫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많은 국가들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티켓 재판매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대신 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법적 테두리 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히려 과도한 본인 확인이 계속되니 현재 한국의 소비자들은 웃돈을 주고 티켓을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물색한다. 본인 확인 단속으로 인해 실 관람자 명의의 아이디로 플랫폼에서 대신 티케팅을 하는 '대리 티케팅' 업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이돌 산업 특성상 소비자의 나이대가 어리다는 점 때문에 소속사가 소비자를 무시하고 인권 유린에 가까운 본인 확인을 지속해선 안 된단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이돌 콘서트가 무슨 보안 시설도 아닌데 과도한 본인 확인은 불필요하다"며 "소속사 등은 아이돌 산업의 고객이 나이가 어리다 하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돌은 일류일지 몰라도, 업무 처리는 삼류인 것"이라고 말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