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커지기만"…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이 대통령실 앞에 선 이유

유가족협의회, 12월28일까지 릴레이 1인 시위 예고
부모 잃은 고재승 씨 "유가족 알권리 침해당해…진상조사를"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한 모습. 2025.7.3/뉴스1 ⓒ News1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카페 가면 어머님들이 커피 드시고, 아버님들이 이야기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가장 슬퍼요."

고재승 씨(43·남)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사랑하는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 참사로부터 6개월이 지났지만, 고 씨의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기만 했다. 부모님 연배의 분들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걸 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다.

왜 그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는지 진실을 모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해소되지 않을 슬픔이었다. 그래서 고 씨는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왜 희생자 179명이 사망했는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다. 유족들이 서울로 상경해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가족들은 12월 28일까지 1인시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첫 번째 1인 시위자로 나선 고 씨는 이날 오전 11시 찜통 더위 속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철저한 진상규명! 집으로 돌아가자! 안전한 대한민국!'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섰다. 고 씨의 옆엔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왜 179분이 돌아오지 못하셨는지...'라고 적힌 또 다른 팻말이 놓였다.

고 씨는 지난달 30일 시행된 12·29 여객기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에 따른 특별법에도 진상규명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고 씨는 "특별법이 빠르게 만들어진 것은 감사하지만 진상조사 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왔다. 특별법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생활 보조에 필요한 비용인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고 씨는 공무원·자영업자 유가족에겐 해당하지 않는 특별법 시행령의 '치유휴직'에 대해서도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사고가 났는데 어떤 유가족들은 차별을 받는다"며 "치유 휴직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같이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시행령 8조엔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법 시행 후 3년 이내 1년 동안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신청 유족은 '근로자'로만 규정돼 있다.

진상규명을 하고 있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없어 유족이 사고 조사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도 고 씨를 답답하게 했다.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경우 지난달 17일 진상규명 조사개시 결정을 내려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고 씨는 "국토교통부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특조위와 기능이 겹친다면서 결국 특조위를 특별법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사조위와 특조위는 역할이 다르다"며 "사조위는 왜 이 사고가 났고 어떻게 하면 항공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면, 특조위는 이 사고가 난 원인이 누구한테 있으며 그 대책을 분석하고 조사하는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사조위가 유족들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브리핑한 것은 4월 초가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저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유가족의 알 권리가 매우 침해당하고 있다"며 "어떤 식으로든 유가족이 참여할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많이 내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열린 타운홀미팅 당시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한 바 있다. 유가족들은 오는 16일 이 대통령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 씨는 릴레이 시위 종료 시점으로 예고한 12월 28일 전에 유가족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시위를 멈출 것이냐는 질문에 "솔직히 그 전에 크게 뭐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를 안 하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