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뿌리자 승객들 혼비백산…5호선 그놈, 유유히 라이터 꺼내 '휙'(종합2보)
지하철 방화범 구속 상태로 재판행…승객 160명 살인미수 혐의 추가
범행 10일 전 휘발유 등 구매…범행 전 가족에 전재산 송금
- 권진영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김종훈 기자 = 5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 평온한 지하철 5호선. 모자를 눌러쓴 한 남성이 갑자기 가방에서 노란색 휘발유가 든 통을 꺼내더니 바닥에 뿌리기 시작하자 놀란 지하철 승객들이 대피했다. 등 뒤로 갑자기 휘발유가 뿌려지자 깜짝 놀라 도망가는 청년과 뒤늦게 뛰어가다 바닥에 뿌려진 휘발유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임신부까지 지하철 내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하며 피신하는 승객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남성은 도망가는 승객들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유유히 돌아서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지하철 내부는 순식간에 천장까지 불길이 치솟더니 이내 까만 연기로 뒤덮였다. 5월 31일 지하철 5호선 방화 순간 공개된 지하철 내부 CC(폐쇄회로)TV 영상에는 그날의 아찔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 불을 지른 남성은 범행 25일 만에 구속 기소됐다. 검찰 수사를 통해 살인미수 혐의가 더해졌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부장검사 손상희)은 25일 원 모 씨(67·남)를 살인미수, 현존전차방화치상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원 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2분쯤 5호선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마포역으로 향하는 열차 4번째 칸에서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이 화재로 원 씨를 비롯해 총 23명이 연기 흡입 등 경상을 입었다.
당초 경찰은 원 씨에 대해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지만, 검찰은 탑승객 160명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했다. 아울러 위험 물질인 휘발유 등을 가방에 숨겨 열차에 탑승해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당시 탑승객은 400명이 넘었지만, 신고내역·구급일지 등에서 이름이 확인된 160명만 피해자로 특정됐다.
검찰은 지하철 내 대량 유독가스 확산, 대피 과정에서의 압사 가능성 등으로 인해 지하철에 탑승한 승객 전체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초래된 점을 감안해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원 씨는 이혼소송 결과에 대한 불만과 아내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범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검찰청에서 실시한 통합심리분석 결과, 원 씨는 사이코패스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분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 특성을 가져 이혼 소송에서 패소한 뒤 피해망상적 사고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원 씨는 지하철 방화를 결심하고 범행 10일 전인 지난달 21일 주유소에서 휘발유 3.6리터를 구입하고, 토치형 라이터를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주유소 업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오토바이 운전자인 것처럼 가장해 헬멧을 착용하고, 현금으로 유류비를 지불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도 함께 죽겠다는 생각으로, 범행 전 신변 정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기예탁금·보험 공제계약을 해지하고, 투자한 펀드도 모두 환매해 전 재산을 가족에게 송금했다.
원 씨는 범행 전날인 지난달 30일 휘발유를 소지한 상태로 1·2·4호선을 번갈아 타며 영등포역, 서초역 등 주요 지하철역을 경유·배회하는 등 범행 기회를 노린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이 사건을 신속하게 수사하기 위해 형사3부의 손상희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12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을 조직했다. 수사팀에는 강력, 방·실화 전담 검사 4명, 수사관 8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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