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숙명여대·국민대의 지연된 정의가 민망한 이유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너무 유명한 말이지만, 혹자는 시간이 다소 지났더라도 정의가 실현됐으면 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보단 늦더라도 실현되는 게 낫지 않냔 취지일테다. 하지만 권력 앞에 바짝 누워 있다가, 권력자가 바뀌자 갑자기 '정의 실현'하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연된 정의를 '정의'라고 불러주기엔 그 무게가 너무 가볍다.
숙명여자대학교와 국민대학교의 김건희 여사 학위 취소 마무리 소식엔 '지연된 정의'란 말을 붙이는 것도 다소 민망하다. 두 학교의 학위 취소 결정은 지연돼도 너무 지연된 결과라 그렇다. 윤석열 정부 3년간 외면하다 정권 교체 3주 만에 학위 취소 마무리 단계를 알리며 연이어 보도자료를 작성한 두 학교의 모습은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숙명여대가 논문 표절 의혹을 받던 김건희 여사의 석사 학위를 취소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대 대선 직전인 2022년 2월 예비조사에 착수한 지 3년 4개월 만인 지난 24일이었다. 국민대도 숙명여대의 석사 학위 취소 직후 박사 학위 취소에 관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김 여사의 논문에 대한 조사를 윤석열 정권 3년간 차일피일 미뤄왔다. 논문에 대한 표절 검증이 너무 어려웠다기엔 김 여사의 논문은 참고문헌까지 합쳐도 고작 60여 페이지에 그친다. 숙명여대는 2022년 2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연진위)를 구성한 후 예비조사에 착수했지만, 본조사는 그해 12월에야 시작했다. 본조사는 별 설명도 없이 조사 기간이 여러 차례 연장됐다.
시간을 끌던 숙명여대가 김 여사 논문에 대해 표절 잠정 결론을 내린 건 이미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던 지난해 12월이었다. 숙명여대는 결국 올해 1월 당사자인 김 여사와 제보자인 민주동문회 측에 논문이 표절이란 조사 결과를 통보했다.
그러더니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3주 만에 숙명여대는 학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지 2주도 채 안 돼서 학위 취소를 위해 학칙을 개정했고, 연진위는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3일 학위 취소 결정을 내렸다.
학위 취소를 두고 시간을 끌어온 것은 국민대도 마찬가지다. 국민대는 논문 발표 후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본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교육부의 등쌀에 마지못해 조사를 진행했다.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은 2021년 7월 제기됐다.
심지어 국민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인 2022년 8월 김 여사의 박사학위논문과 학술지에 게재한 2편의 논문 등 3편이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중엔 김 여사가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해 조롱받은 논문도 포함돼 있다. 검증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있을 수 없는 수준의 논문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국민대는 지난 24일 숙명여대의 석사 학위 취소 결정이 내려지고 1시간 만에 박사학위 과정 입학 무효 처분 절차에 착수했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박사학위 과정 입학 자격은 '석사학위를 소지한 자'로 규정하고 있으니, 숙명여대 석사 학위가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박사 학위도 무효가 된다는 논리다. 즉 논문의 표절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3년 동안 끌어온 학위 취소가 탄핵 국면 6개월, 정권 교체 3주 만에 끝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학교 모두 지난 3년간 언제든 마칠 수 있었던 표절 검증·학위 취소를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끌어왔다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특히 학문과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교에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느라 학위 검증을 회피한 건 부끄러운 일을 넘어 책임을 유기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논문들이 있다면 검증하고, 그에 맞는 처분을 적시에 내는 게 대학의 역할이다.
김 여사가 영부인이 아니었다면 논문 표절 논란에 이렇게 3년을 끌었을까. 학비를 내고 해당 학교들에서 애정을 갖고 공부한 재학생·졸업생에게도 미안해야 할 일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라고 말했다. 한때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서 있던 상아탑의 가치를 스스로 바래게 하는 건 누구일까.
sinjenny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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