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체포 정식' 디저트 '키세스'"…MZ, 尹 체포에 '음식 연대'
尹 체포 후 SNS 등에 '체포 정식' 공유…"집회 기억 남기고 싶어"
전문가 "집단 기억 소환해 연대감 높이는 놀이 문화…소속감↑"
- 김예원 기자, 이강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이강 기자
"엄청 추운 날 국회 앞에서, 한남동에서 고생한 걸 기념하고 싶었어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김 모 씨(28)는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친구들과 저녁 메뉴 사진을 올리며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서 만든 김치찌개와 파스타부터 치킨, 마라샹궈 등 배달 음식까지 다양한 메뉴가 올라왔지만 부르는 이름은 하나였다. 바로 '체포 정식'이다.
김 씨는 "친구들 모두 이번 비상계엄 직후 체포 촉구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며 "일상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축하했다. 디저트로 '키세스' 초콜릿도 하나씩 먹고 인증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허쉬 키세스 초콜릿은 미국 유명 초콜릿 브랜드 제품의 이름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 밤샘 농성을 하는 집회 참석자들이 보온 기능이 있는 은박 담요를 두르고 추위를 피하는 모습이 키세스와 닮았다는 이유로 '키세스 시위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난 15일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된 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그날 먹은 음식을 SNS나 단톡방 올려 기념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부는 집회 현장에서 사용했던 응원봉을 음식과 함께 찍거나, '키세스', '도도한 나초' 등 비상계엄 당시 화제가 됐던 음식을 먹으면서 연대 의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대학생 심 모 씨(26)도 아르바이트를 끝낸 늦은 저녁 아버지와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하루를 기념했다. 심 씨의 '체포 정식'은 감자탕과 소주 한 잔이었다.
심 씨는 "저번엔 애인이랑 윤 대통령 국회 탄핵 의결 기념 '탄핵 정식'을 먹었는데,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며 '체포 정식'을 즐겼다"며 "의결 후 사법 절차가 지지부진해서 허탈한 마음이 컸는데, 남은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활발하게 포착된다. 15일 밤부터 엑스(X·옛 트위터), 블로그 등 SNS엔 '체포 정식', '구속 정식'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한 끼 식사를 공유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인물 관련 인형이나 응원봉을 함께 인증하는 게시글들도 눈에 띄었다.
'도도한 나초', '키세스' 등 이번 집회 때 주목받았던 음식들을 먹었다는 글도 여럿 올라왔다. 오리온의 과자 제품 중 하나인 '도도한 나초'는 비상계엄 당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해당 과자를 사러 가다 검문을 당했다는 시사 프로그램 보도가 나오면서 입소문을 탔다.
전문가들은 이런 '음식 연대'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의식과 SNS 놀이 문화가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체포 정식'을 공유하는 건 원형적으로 보면 부족민들이 사냥 후에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집회 당시 형성했던 집단 기억을 소환해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연대감을 높이는 일종의 '하위문화'"라고 설명했다.
편의점, 디저트 가게에서 파는 여러 음식을 조합해 'OO 정식'이라고 이름 붙이며 즐기는 문화에 익숙한 세대인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예인 또는 그 팬들이 샌드위치나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브랜드 토핑 조합을 추천하면, 이를 직접 주문해 먹고 그 후기를 SNS에 공유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2016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소시지, 라면 등을 조합한 '마크 정식'에 출발한 '음식 인증' 트렌드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새우 샌드위치에 에그 마요 등 토핑을 추가하는 '우즈 정식',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에 샤인 머스캣 등 각종 토핑을 추가한 '5억 정식' 등의 이름으로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체포 정식' 등을 조어해 풍자하는 현상에 SNS가 가진 놀이 문화적 특징이 결합한 결과"라며 "이러한 놀이문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연대감과 소속감, 응집력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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