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묻지마 살인' 가해자 주변에는 사랑이 없었다"
유치인 교화 활동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
삶의 의지 내려놨던 유치인에게 감사 편지 받기도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굳이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선교사들은 유치인과 형제가 되기 위해 다가갈 뿐이에요. 그리고 친구가 되는 거죠."
서울 시내 경찰서 유치장을 찾아 유치인들의 새로운 삶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선교사들이 그 주인공이다.
유치장은 구속된 피의자나 경범죄자 등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찰서 내부시설이다.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유치장에 수용된 이들을 유치인이라고 부른다.
교단 차원에서 50년째 유치장을 드나들며 유치인들을 만나 온 개신교와 비교하면 천주교 차원의 경찰서 선교는 역사가 짧은 편이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는 2000년 9월 19일 경찰기관의 가톨릭 종교 활동에 대한 정부의 요청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지침에 따라 설립됐다.
서울지역 경찰서·기동단·지구대의 가톨릭 신자들과 각 경찰서 내 유치인들, 전·의경 대원의 고충을 경청하고 신앙생활을 돕는 것이 경찰사목위원회의 목적이다.
◆"음악과 함께하는 '맞춤형 개인면담'으로 사회 생활 돕죠"
천주교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소속 선교사 박모씨(67)는 19일 오전 11시쯤 서울 소재 모 성당에서 뉴스1과 만나 "유치인들이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도우려 한다"고 활동 의의를 설명했다.
신원을 밝히길 사양한 이유에 대해서는 "선교사들은 유치인들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활동하는 게 원칙"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집안에 성직자가 있어 앞에 나서지 않고 신자들도 모르게 활동을 조용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치인은 붙잡힌 상태에서 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에 유치장에서는 시간이 멎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모든 것을 재충전할 수 있는 그때 필요한 것이 뭔지 가르쳐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선교사들은 '맞춤형 개인면담'을 진행한다. 20~30대의 젊은 유치인들에게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로, 40대 이상의 유치인들에게는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질문으로 말문을 연다.
박씨는 "술에 취해 무전취식을 하고 2주 연속 유치장에 들어온 유치인에게는 천주교의 알코올중독치료센터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며 "'유치장이든 구치소든 밥만 먹여 주면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노숙인들에게는 무료급식센터를 알려주면 웃으면서 경계를 푼다"고 말했다.
◆나흘간 굶으며 삶 포기하려 했지만…"더 열심히 살겠다"
박씨는 면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인들이 '진정으로 날 위해 온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고 참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유치인이 괴로움을 토로할 때 함께 눈물 흘리며 고통을 함께하고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씨는 "유치장에는 사회에서도 관심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며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면 불과 30분 사이에 유치장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90도로 절을 하는 등 변화가 빠르게 온다"고 귀띔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새 삶을 얻은 유치인의 존재는 선교사들이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박씨는 구치소에서 A4용지 4장에 걸쳐 빽빽하게 적어 내려간 편지를 경찰서로 보낸 한 남성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박씨는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활동할 당시 파트너와 함께 들어가서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많이 울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부도를 내고 유치장에 들어온 뒤 삶을 포기하려고 4일간 밥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편지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회고했다.
박씨는 "한참 울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해져서 안 먹던 밥을 다 먹었다더라"며 "'세상을 포기하려 했는데 잘못 생각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쓴 내용을 보고 무척 보람을 느꼈다"고 웃었다.
선교사들의 방문은 경찰을 대하는 유치인의 태도까지 바꿔 놓는다. 박씨는 "선교사들이 다녀가면 유치인들이 조사에 협조를 잘할 뿐만 아니라 유치장의 분위기도 온화해진다"며 "경찰들도 선교사들이 다녀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블레이블루'라는 게임에 빠져 묻지마 살인 저지르기도
박씨와 동료들이 '이웃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활동하려 애써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절절하게 느낀 계기는 서초경찰서 유치장에서 '잠원동 묻지마 살인 사건'의 가해자 박모씨(23)를 만났을 때였다.
박씨는 2010년 12월 5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아무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뒤 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는 "가해자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다'고 했는데 머리도 좋아 보였다"며 "칼로 사람을 죽이는 '블레이블루'라는 게임에 빠진 나머지 '어느 날 새벽에 나가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놓더라"고 전했다.
박씨는 "가해자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했지만 부모는 무관심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며 "가정이 중요하고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늘 되새긴다"고 안타까워했다.
◆"주어진 시간 30분…관건은 '눈 맞추기'"
선교사들이 유치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남짓. 모든 유치인이 선교사를 반기지는 않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유치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박씨는 "선교사들은 유치장에 누워 있는 유치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가장 힘들어한다"며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통해 유치인과 눈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의례적으로 커피와 차를 먼저 권하는 대신 선교사들이 사비를 털어 준비한 빵부터 건네거나 면담의 주제에 맞춰 음악을 틀어 주는 등 선교사들의 소박한 노력은 유치인들의 마음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묻는 말에 박씨는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던져 주고 유치인들이 도약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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