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씨 일가 그만' 더 이상 못쓰는 이 구호 누가 어떻게 대체할까?

[임성일의 맥] 과거 선거 '정몽규 반대'에 갇혀
새 시대 기대하게 할 비전 제시로 공감 끌어내야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28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대표팀 숙소를 나서고 있다. 2026.6.29 ⓒ 뉴스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길었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마지막 임원 회의를 진행한 후 공식 사임했다. 북중미 월드컵 폐막에 맞춰 발표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축구계를 둘러싼 여론이 너무 좋지 않자 퇴임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처음 축구협회장에 오른 지 13년 5개월 만이자 지난해 2월 4선에 성공한 지 1년 5개월 만에 한국 축구 수장직에서 내려왔다.

많은 이들이 바란 '정몽규 아웃'이 비로소 현실이 됐다. 그래도 한동안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나 재건은 한참 걸린다.

이참에 한국 축구계를 뒤엎어보자며 'K-축구혁신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조직이 꾸려졌다. 정부가 움직였고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박지성이 공동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급한 불부터 끄자고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는 아니겠으나 한계는 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도 "K-혁신위의 역할과 기간은 축구협회 차기 집행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한시적"이라고 규정했다.

중요한 것은 차기 축구협회장으로 어떤 인물이 뽑히느냐다.

현 집행부 부회장 중 한 명이 직무대행으로 결정되면 선거운영위원회를 꾸려 60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방식을 둘러싼 왈가왈부가 뜨거울 것이다. 지금 축구협회 정관대로라면 '간선제'로 진행해야하지만 혁신위와 체육회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선거인단 확충, 직선제 전환 등도 가능한 분위기다.

형식에 내한 진지한 논의와 함께 다음 '축구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은 더더욱 진지한 자세로 준비해야한다. 이젠 '정몽규 반대'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박지성 K-축구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7.6 ⓒ 뉴스1 안은나 기자

정 회장은 2011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활동하다 2013년 제52대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허승표, 김석한, 윤상현 후보와 경쟁을 이겨내고 당선됐다. 당시 대항마들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역대 최장인 16년 간 대한축구협회를 이끈 정몽준 회장 시대를 수면 위로 꺼내 '鄭씨 일가 그만'을 모토로 내세웠으나 축구인들의 선택은 정몽규였다.

재선과 3선은 수월했다. 정 회장은 이후 53대와 54대 축구협회장 선거에 단독 입후보, 자리를 유지했다. 스스로 '마지막 임기'라 천명한 55대 선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 회장의 압승이었다.

허정무와 신문선이라는, 오랜 축구인이면서 대중적 인지도까지 아주 높은 두 후보가 선거에 뛰어들었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축구협회와 정 회장의 무능과 불통, 독선 등을 지적했음에도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유효표 182표 중 정 회장이 156표를 받았다. 허 후보 15표, 신 후보 11표였다.

선거인단이 너무 적어 축구인들의 뜻을 모두 반영할 수 없고, 시도협회장이나 구단 단장 등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어 현 회장이 높은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왔으나 그래도 표 차이가 너무 컸다. 제도 폐해가 분명 존재했지만 신문선-허정무 후보의 초지일관 '정몽규 반대'가 큰 설득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이 적잖았다.

당시 한 축구인은 "특별한 비전 제시 없이 지금 체제를 무조건 바꾸자고만 외쳤다. 처음에는 호응을 얻었으나 나중에는 반복되는 주장에 피로감을 느꼈다"면서 "사실 두 후보(허정무-신문선)도 새로운 인물은 아닌데 명확한 내일에 대한 비전 없이 '정몽규 반대'만 외쳤으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축구대표팀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정치권에서도 감독 선임 과정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며 개혁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사진은 29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2026.6.29 ⓒ 뉴스1 김도우 기자

다가오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설 후보는 '정몽규 아웃' 구호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가급적 구체적인 공약과 함께 내놓아야한다. 엉킨 실타래가 넘친다. 축구협회와 축구계를 향한 국민들의 감정은 불신에서 '분노' 쪽으로 넘어갔다. 축구인들도 축구협회를 싫어하고 축구협회 직원들도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호소다.

회장과 집행부가 바뀐다고 해서 이 깊은 골이 한 번에 채워지거나 드라마틱한 축구 발전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것을 바라는 것이 욕심이다. 다만 앞으로의 방향성은 정확하게 제시해줄 수 있는 리더가 나오길 희망한다.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기대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나라 전체가 '화'로 들끓는다. 브라질이나 스페인도 아닌데, 대한민국의 축구 사랑이 이 정도였는지 새삼 놀라울 정도다. 이제 국민들은 조금 이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축구인들은 뼈저리게 반성해야한다.

축구계를 욕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맡겨도 된다. 축구인들은 함께 흙 묻히면서 행동해야한다. '정몽규 아웃'을 외치던 이들 중에서 분명 회장 후보가 등장할 것이다. 오래 고여 있던 물이 빠진 상황에서 새 부대에 어떻게 새 술을 담을 수 있을 것인지, 지금부터 충분히 '내용'을 고민해 팬들과 축구인 앞에 꺼내놓아야 한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