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증명해야 하는 삶"…시각장애인 수영장 거부 사건 맡은 변호사들
[프로보노] ③율촌 정복현·온율 임주연 변호사
수영장 5곳 등록 거부…"보호주의 시선서 벗어나야"
- 송송이 기자
(서울=뉴스1) 송송이 기자
"장애인들은 매 단계 증명해야 해요. 어떻게 수영복을 갈아입고, 샤워실에 가며, 미끄러운 바닥을 지나 수영장까지 도착해야 하는지. 비장애인에게 그런 증명이 요구되진 않죠."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이 올해로 18년을 맞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매 순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사단법인 온율의 임주연 변호사는 말했다.
뉴스1은 지난 16일 수영장 5곳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등록을 거부당한 A 씨를 대리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손해배상과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임 변호사와 정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만났다.
평소 수영을 즐기는 시각장애인 A 씨는 지난해 5월 서울의 한 수영장을 찾았다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A 씨는 등록과 1시간 강습까지 마치고 나왔는데, 수영장 관리자가 나타나 "환불해 줄 테니 나오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A 씨는 "수영 강습을 받는 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민간기관이기 때문에 고객을 가려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뿐이었다. 입씨름은 한동안 더 이어졌지만, A 씨는 결국 환불을 받고 수영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두 변호사는 A 씨가 겪은 일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정 변호사는 "민간기관이라고 장애를 이유로 시설이나 서비스 이용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법은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하는 행위를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당한 사건이지만 재판은 험난하다. A 씨 사건은 업주가 장애인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쟁점인데, 우리나라는 이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전의 한 목욕탕에서 발생한 시각장애인 입장 거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대전지법은 목욕탕 업주에게 입장을 거부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고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이 판결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정당한 사유'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조금이라도 추가적인 조력이나 배려가 필요한 경우 대부분의 직접 차별에 면죄부를 줄 위험이 있다"며 "이는 법 제정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련 판례가 현저히 부족한 점도 재판을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정 변호사는 "이 소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비슷한 판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체육시설·수영장처럼 일상적인 여가 영역 사건에 대한 판례는 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이 외에도 5곳의 수영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등록을 거부당했다.
두 변호사는 이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체육·문화시설 접근권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임 변호사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선택한 행동에 본인이 책임을 질 권리가 있는데 장애인에게만 유독 과잉보호를 이유로 배제가 정당화되고 있다"며 "장애인들의 선택은 존중의 대상이자 책임의 근거"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 역시 "비장애인이 패러글라이딩처럼 위험한 취미를 즐긴다고 해서 법이 나서서 '하지 말라'고 금지하지 않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법원이 더 이상 '위험하니 막아야 한다'는 보호주의적인 시선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조금씩 전진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했다.
임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을 지나치게 좁게 정한 시행령을 14년 넘게 고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언급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편의점, 약국 등 소매점까지 확대하지 않은 입법 부작위가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했다고 봤다.
임 변호사는 "이 판단처럼 14년 전에 비해 우리 사회의 시민 인식과 법원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이번 소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근무한 곳은 서울중앙지법이었다. 그곳에서 재판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던 중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탑승권' 사건을 접하면서 공익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지난 2015년 놀이공원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롤러코스터 탑승을 제한한 사건에서 1·2심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탑승을 제한한 것은 차별"이라는 판결을 한 사건이다.
임 변호사는 "법조인이 된 처음부터 공익변호사를 꿈꿨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 재판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며 "그러다 에버랜드 사건을 접하고 '나는 원래 이런 일을 하고 싶었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공익변호사가 됐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일본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을 회고하며 "일본에서는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와 일상적인 생활과 활동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장애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며 "거기서 처음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율촌과 온율은 함께 법률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익 변호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발달 지연 아동들에 대한 조기 개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마련하고자 율촌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TF가 온율에 꾸려지기도 했다.
율촌은 "앞으로도 법률지원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활동을 지속해서 확대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익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mark83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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