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의 로키]월드컵 '메시 해트트릭' 지켜본 영포티의 마음

편집자주 ...영어 단어 로키(lowkey)는 '사실은' '은근히' '조용히' 등을 뜻합니다. 최근 영미권 MZ세대들 사이에선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은근히 표현할 때' 쓰입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

1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캔자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알제리의 FIFA 월드컵 2026 조별리그 J조 경기에서 세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09년 5월 27일이었다. 유럽 축구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와 FC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가 맞붙었다. 당시 필자는 영국 런던 중심가의 한 술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봤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맨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박지성을 응원했고 루니를 연호했으며 호날두에게 환호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선수가 있었다. 신장 169㎝에 불과한 그는 기라성 같은 맨유 선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마치 포효하는 사자 같았다.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가 경기를 지배하고 있음을 실감했고, 이내 절망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리오넬 메시. 당시만 해도 호날두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신예였다. 그러나 그는 결승 골(바르셀로나 2대0 승)로 맨유를 격침한 후 호날두와의 라이벌 관계를 의미하는 '메호대전'의 서막을 알렸다.

라이벌 대전의 승자는 메시였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국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메시는 호날두를 훌쩍 따돌리고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고백하면 필자는 메시가 아닌 호날두의 팬이었다. 호날두는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했고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미숙한 그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반면 메시는 겸손했고 완벽에 가까워 보였다. 그것이 신이 내린 재능의 발현임을 알았기에 더욱 이질감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메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서다. 메시의 소속팀인 인터 마이애미 CF의 구단주인 데이비드 베컴이 메시에 관해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다. 베컴은 말했다.

메시가 마이애미 훈련장에 처음 온 날을 기억한다. 그는 오전 6시 50분 훈련장에 도착했다. 팀 훈련이 오전 10시부터였다. 메시 외 다른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메시는 이미 모든 것을 이뤘는데도 여전히 승리에 굶주려 있다. 동료가 제대로 안하거나 경기에서 지면 화를 낸다.

메시는 지난 17일 북중미 월드컵 J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알제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는 3대0으로 알제리를 눌렀는데, 세 골 모두 메시가 넣은 것이다. 음바페(프랑스)나 홀란드(노르웨이), 야말(스페인) 등 걸출한 20대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 선두를 달렸다. 젊은 날의 사자와 같은 폭발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적재적소에 슛과 패스를 하는 노련한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하는 메시다.

메시는 한국식 나이로 마흔 살이다. 축구선수로서 황혼기다.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그 나이에 '관리자'인 감독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지 않다. 그런데도 '현역'인 메시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는 20대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 마침내 그런 그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기사 생활 10여 년 차에 이르니, 예전 같지 않음을 확연히 느낀다. 올해 초 잠시 정치부에서 근무할 때였다. 여당 지도부 일정 등 현장을 챙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기자에게 현장이란 축구선수의 경기장과도 같다.

어느 날 국회 본관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워딩'(기자가 타자를 쳐 발언을 기록하는 것)을 했다. 그러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발화자인 국회의원의 발언을 따라가는 것이 버겁다고 아우성쳤다. 주변으로 빼곡히 앉은 혈기 왕성한 2~5년 차 기자들은 달랐다. 20~30대인 그들은 속사포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 직감했다. 현장 대응 감각과 순발력이 무뎌지고 있음을. 저널리즘의 격전지인 현장에서 더는 우위를 자신할 수 없음을. 어느덧 현장 기자와 관리자 사이의 길목에 서 있었다.

메시보다 다섯 살 많은 필자는 그래도 '현역' 메시를 응원한다. 메시가 다음 경기부터 크게 부진해 이번 월드컵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그를 지지할 것이다. 그가 2030년에 열리는 다음 월드컵에도 출전하길 바란다. 주름살이 패인 40대 선수가, 조카뻘 젊은 선수들과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한다.

중년기에 접어든 메시도 저렇게 열심히 뛴다. 우리도 열심히 하면 메시만큼 아니더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고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 이 글을 보고 "영포티(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40대) 아니냐"며 오글거려야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꼰대가 된 중년의 직장인에게도 용기와 위안은 필요한 법이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