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아이 생각해 울지 마"…펫로스 전문가가 말한 위험한 위로

심용희 수의사 "펫로스는 극복 대상 아냐"

심용희 수의사가 지난 13일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동대문에서 열린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주최 특강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주제로 강연하며 추정 나이 27살까지 장수한 반려견 순돌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떠난 아이도 당신이 슬퍼하는 걸 알면 더 슬퍼할 거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에게 흔히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하지만 펫로스(Pet Loss)를 겪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제 그만 슬퍼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며 충분히 애도할 권리를 빼앗는 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 민관협력 입양센터 '발라당'을 운영하는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대표 최미금)은 지난 13일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동대문에서 '펫로스, 아픈 기억이 아닌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기'를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강연을 맡은 심용희 수의사는 "펫로스를 겪는 보호자들은 이미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떠난 아이가 슬퍼할 테니 울지 말라'는 말은 슬픔 자체를 억누르게 만들고 애도할 권리마저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권리박탈적 비탄(Disenfranchised Grief)'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충분히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슬픔을 뜻하는데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심 수의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슬퍼할 거냐', '다시 키우면 되지 않느냐', '다른 일에 집중해 보라'고 쉽게 말한다"며 "하지만 이런 말들은 슬픔을 위로하기보다 오히려 슬퍼할 시간을 빼앗고 감정을 억누르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슬퍼할 거냐'는 식으로 인간과 반려동물의 죽음을 비교하며 감정의 크기를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며 "비반려인뿐 아니라 반려인 사이에서도 애도 방식이 달라 상처를 주는 일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심용희 수의사는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펫로스 증후군)을 다룬 책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의 저자다(동행 제공). ⓒ 뉴스1

현재 한국마즈 학술팀장으로 활동 중인 심 수의사는 다수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직접 돌보다 떠나보낸 경험뿐 아니라 펫로스를 겪는 보호자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애도 과정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날 강연에 나섰다. 저서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국내뿐 아니라 대만과 태국에서도 출간됐으며 스페인어판 출간도 앞두고 있다.

심 수의사는 먼저 펫로스와 펫로스 증후군(신드롬)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펫로스는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상황 자체이고, 펫로스 신드롬은 그로 인해 발생한 스트레스 상태"라며 "힘들고 슬픈 감정은 병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펫로스는 반려동물을 얼마나 오래 키웠는지와 상관없다"며 "임시보호했던 동물이나 길에서 돌보던 고양이와의 이별도 충분히 깊은 상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으로는 죄책감과 후회가 꼽혔다.

심 수의사는 "왜 더 빨리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왜 그때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반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죄책감과 후회 역시 애도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펫로스를 겪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단계를 경험한다.

그는 "부정은 반드시 '믿을 수 없다'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며 "기억을 회피하거나 감정을 미루고, 계속 의심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울은 애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라며 "다만 감정이 흐르지 않고 자기 비난이 멈추지 않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됐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강연에서는 펫로스 신드롬 자가 점검 도구인 PBQ(Pet Bereavement Questionnaire)도 소개됐다.

PBQ는 반려동물 상실 후 보호자가 느끼는 죄책감과 분노, 슬픔의 정도를 확인하는 설문 도구다. 단순히 슬픔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 과정이 건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 활용된다.

심 수의사는 "펫로스를 극복해야 한다거나 빨리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고 책임감 있게 돌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펫로스는 상담을 통해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겪어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며 "'펫로스 동반'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변 사람이 펫로스를 겪고 있다면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 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심 수의사는 "제안과 위로는 다르다"며 "펫로스를 겪는 보호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심용희 수의사는 반려동물 상실 후 애도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메모리얼 테이블'을 제안했다. ⓒ 뉴스1

애도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는 '메모리얼 테이블(Memorial Table)'도 소개했다.

메모리얼 테이블은 반려동물 사진과 액자, 꽃, 촛불, 조형물 등을 놓아 반려동물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을 집 안에 마련하는 방식이다.

심 수의사는 "생전 반려동물을 돌보듯 메모리얼 테이블을 정성껏 관리하는 것 자체가 상실을 치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며 "집사가 원할 때까지 아이를 추억하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돼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애도는 감정이 무뎌지거나 기억이 잊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펫로스는 극복하거나 잊어야 하는 슬픈 기억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며 천천히 겪어내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한 참가자는 "펫로스는 잊거나 극복해야 하는 슬픔이 아니라 사랑했던 존재를 추억하며 천천히 겪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그동안 힘들게만 여겼던 슬픔을 이제는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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