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의 물이 지키는 것…예비주수, 산불 대응의 새로운 전략 [기고]
김승룡 소방청장 직무대행
지난해 3월, 경북 영남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은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타고 하루 만에 축구장 수천 개 면적의 산림을 집어삼켰다. 잿더미 위에 선 주민들의 얼굴에는 공포나 분노가 아닌 체념이 서려 있었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기존의 대응 방식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기후 변화는 산불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봄·가을에 집중되던 산불 위험은 이제 사계절로 상시화했고, 고온·건조·강풍이 결합한 극한 기상 조건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을과 도시를 위협하는 시대가 됐다. '불이 나면 끈다'는 사후 대응 중심 체계로는 더 이상 대형 산불을 막기 어렵다.
해답은 분명하다. 불이 번진 뒤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길이 닿기 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소방청이 '예비주수'(豫備注水)를 산불 대응의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비주수는 산림 경계와 주거지, 주요 시설 주변에 사전에 물을 살포해 가연물의 습도를 높이고 착화 가능성을 낮추는 선제적 방어 방식이다. 건조한 날씨에는 불씨가 바람을 타고 수백 미터 이상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이 잦은데, 지표와 구조물이 충분히 젖어 있으면 착화 확률은 많이 감소한다.
국립소방연구원 실험에서도 비상소화장치로 단 3분만 물을 뿌려도 비화에 의한 착화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단 3분의 선제적 준비가 수십 시간의 사투와 막대한 피해를 대신하는 셈이다.
이 전략은 현장에서 이미 검증됐다. 필자는 강원특별자치도 소방본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주민들과 함께 비상소화장치 사용법을 교육하고 '예비주수의 날'을 운영하며 마을 단위의 자율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전문 소방력이 도착하기 전 확보되는 몇 분의 골든타임이 결국 피해 규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체감했다.
소방청은 이러한 경험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산불 취약지역 1199개소에 비상소화장치를 추가 설치했으며, 향후 5년간 매년 456개소씩 총 2280개소를 확충해 예방 중심의 인프라를 촘촘히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원자력시설, 사찰, 철도 등 국가 기반 시설 주변에는 사전 살수와 방어선을 체계화해 '선제 차단형 방재 체계'를 정착해야 한다.
진화 전략 또한 고도화하고 있다. 산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야간에는 열화상 드론과 특수장비를 활용해 입체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확산 우려 단계부터 '국가소방동원령'을 선제적으로 발령해 인접 시도의 소방력을 즉시 투입하고 있다. 초기부터 압도적인 소방력을 집중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과 장비를 갖추더라도 국민의 참여 없이는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불법 소각을 멈추고 인화물질을 철저히 관리하며, 마을 단위 예비주수 활동에 동참하는 실천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산불 예방책이다.
소방청은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산림·군·경찰 등 관계 부처 및 지자체와 단단하게 연대해 철저한 예방과 빈틈없는 대응으로 국민 곁을 든든히 지키겠다고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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