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새해에 바라는 한가한 소망

(서울=뉴스1) 여태경 사회정책부장 = 수능이 끝나고 정시모집이 한창이다.
연말을 맞아 내 또래들 송년 모임에서도 입시는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수험생 딸을 둔 지인은 예상보다 어려운 수능에 어느 대학에 원서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시간에 100만원 하는 입시 컨설팅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또 다른 지인은 백내장 수술까지 미뤄가며 대입설명회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수능이 끝나면 어김없이 원어민들도 못 풀어서 쩔쩔매는 수능영어 영상과 기사가 쏟아진다. 올해 영어는 '고대 문자 해독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한국교육평가원장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인정하고 입시에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했다.
수능 1세대, 마루타 학번인 나도 사회정책부를 맡고 30여년 만에 영어만큼 논란이 된 국어 칸트 관련 문항을 풀어봤다.
대학 교수도 답이 없다고 할 만큼 논란이 된 문항이라고 위안을 삼기는 했지만, 변별력을 위해 국어를 외계어(좀 과장해서)처럼 느끼게 할 만한 문항이 우리가 국어라는 과목을 배우는 목적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었다.
변별력과 킬러문항은 어차피 그 경계가 모호하고, 성적에 따라 줄 세워서 대학에 들어가는 입시 제도에서는 영원히 풀지 못할 미제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대입 제도는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논란이 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불수능이면 공교육 과정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항들로 인해 사교육 의존도를 높여서 비난을 받았고, 물수능이면 '변별력 실패' '재수생 양성' 문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입시경쟁은 사교육비 증가로 가계에 큰 부담을 주었으며 교육기회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소득수준이 높고 사교육이 활발한 강남 3구 출신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전체 일반고 학생들보다 높은 건 지금 같은 입시체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그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경쟁의 울타리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4세, 7세 고시라는 말이 생겨나고, 대치동에서는 이런 것도 한다더라는 소문은 학부모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끝이 없는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다.
30년 넘은 수능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수능을 절대 평가로 바꾼다고 해서, 수능을 폐지한다고 해서 지금 같은 과잉경쟁이 사라질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바꿔야 오랫동안 복잡하게 얽히고 쌓여온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최근 "국가 교육의 목표 달성을 제약해온 극심한 대입 경쟁 체제를 약화하고 종국에는 와해시키는 길을 가야 한다"며 교육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교육적 타당성과 명분이 있더라도 실험을 할 수는 없다"며 충분한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교육정책 변화 예고에 학부모들은 벌써부터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리 아이가 실험대에 오를까 우려하고 있다.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혼란만 가중되고 사교육비만 더 늘어났으니 기우도 아니다.
그렇다고 만성화됐으니 눈감고 대한민국 교육을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할 100% 딱 들어맞는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없을 것이다. 다만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린 교육당국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되찾고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부터가 교육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이 학원 뺑뺑이로 꽉 찬 스케줄 속에서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깊은 심심함'의 시간을 누려보며 미래를 맞이하기를 소망해본다.
har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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