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으로는 경제가 바로 서지 않는다 [전문가 칼럼]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부자 되세요"란 말이 1990년대 대중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부자'(富者)는 한자어 '富'(부)와 '貴'(귀)가 합쳐진 말로 경제적인 번영과 함께 사회적 명성을 얻으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 뒤에 언제나 보이지 않게 "집 한 채 마련하세요"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곤 했다.

부동산은 오랫동안 계층 사다리의 가장 굵은 기둥 역할을 해 왔다. 의식주 중에서도 집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 형성과 사회적 이동을 결정하는 기준이란 사실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사다리가 점점 위로만 올라가 서민들이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지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집은 삶의 안정이 아니라 투기와 규제, 세금의 중심이 돼 버렸고, 결국 서민들에게는 부자가 되는 첫 번째 관문마저 막혀 버린 모습이다.

어려운 경제, '역성장' 같은 말로 숨기지 말아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영향으로 한국의 올해 달러 환산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어느 신문을 보니 '6분기 만에 역성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일본을 예로 들면서 '트럼프 관세'의 영향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설명해 놓은 것이다. 과거에는 '마이너스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경제가 퇴보했는데, '성장'이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 관계로 앞에 '마이너스'(-)를 붙여서 만든 용어였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말장난이라고 한다.

이런 말장난으로 독자(국민)를 현혹해서는 안 된다. 솔직하게 "무슨 이유로 인해 국가의 경제가 나빠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옳다. 국민연금을 투자해서 환율을 잡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마구 돈을 풀어 놓으니 달러 환율은 올라가고, 기름값은 뛰는 것이 아닌가.

국가에서 가장 쉽게 돈을 늘리는 방법이 세금을 왕창 올리는 것이다. 그중 더 쉬운 방법이 부동산의 가치를 높여서 거기서 나오는 각종 세금으로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것이다. 필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보는 시각이 가장 일반적인 서민의 시각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부동산 세수 확대, 결국 서민 부담만 초래

정부에서는 현금을 너무 살포해 경제가 무너지고 있으니, 세금을 쉽게 걷는 방법으로 부동산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끌(?)해서 아파트를 구입해 대박을 내려고 하던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을 취득해 일확천금을 벌려고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지금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이 강남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강남의 열풍이 지나치게 심하게 불었다. 이제는 잠잠해질 때도 됐는데, 강남에 이미 집을 갖고 있는 관료들의 생각대로 "나는 집이 있으니, 너희들은 천천히 지방에 있는 주택이나 사렴"이라고 하는 말이 남의 말 같지 않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및 주택 단지.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부동산 전문 용어를 잘 알지 못해서 검색해 봤다. 처음 보는 단어도 몇 개 있다. 이해하기 힘든 단어도 있다. 우선 몇 가지를 살펴보자.

ㆍ반전세 : '보증금+월세'를 섞은 형태(보증금은 크고 월세는 적음)

ㆍ갭투자 : 전세금을 끼고 집을 사는 투자 방식(매매가 – 전세가의 차이를 노림)

ㆍ조정대상지역 : 정부가 집값 상승을 억제하려고 규제하는 지역으로 대출, 세금 규제가 있음

ㆍ권리금 : 상가 등을 임대할 때, 기존 임차인이 새 임차인에게 요구하는 추가 비용

ㆍ용도지역 : 토지를 주거, 상업, 공업, 녹지 등으로 구분해 놓은 지역

집합건물 : 아파트나 오피스텔처럼 하나의 건물 안에 여러 소유자가 있는 형태

처음 보거나 낯선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단어 외에도 '안정적인 불로소득', '장기 투자', '부의 대물림' 등의 어휘들도 눈에 띈다. 부의 대물림이야 과거에도 있었지만 요즘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대열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진 실정이다. 그래서 비트코인도 기웃거리고, 주식에도 거닐어 보지만 개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얘기다.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 전환 시급

이제는 규제, 세금, 관리 부담 등으로 인해 부동산 보유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집을 사려면 자금 출처도 밝혀야 하고, 서울은 정부의 승인도 얻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부동산 자산 비율을 줄이고 펀드, ETF, 해외 주식 등 금융 자산 비중을 늘리는 추세로 가는 모양이다. 이런 단어들은 더욱 어렵게 다가와서 소시민들은 접근하기조차 버거운 것들이다.

국민들이 마음 편하게 잘 살 수 있게 하는 길은 안정된 경제 속에서 가능하다. 돈을 마구 찍어내거나, 부동산 가격을 인상해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엉뚱한 곳에 국민연금 투자하지 말고, 세금을 마구 뜯어가지 않는 것이 백성을 살리는 길이다.

경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말장난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 정직하게 현실을 설명하고, 서민들의 숨통을 조이는 정책부터 바로잡는 것이 지금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한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