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땐 총장 사퇴·文정부 땐 추윤 갈등…'수사지휘권'이라는 뇌관

노만석 총장 대행 퇴임했으나 '항소 포기 외압 의혹 여전
이진수 법무차관이 실제로 '수사지휘권' 언급했는지 '미궁'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2025.11.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 항소 포기' 논란 끝에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사퇴했지만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노 전 대행에게 수사지휘권을 언급하며 '항소 포기'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을 증폭하는 '뇌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데 검찰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며 사퇴한 바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규정돼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다.

검찰청법 제8조에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 지휘·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수사지휘권이 실제로 발동된 것은 검찰청법 제정 56년 뒤인 2005년이었다.

2005년 10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던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이 첫 번째 사례였다.

'6·25 전쟁은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취지의 칼럼을 쓴 강 전 교수에 대한 구속 필요성이 있지 않다는 게 사유였다.

공교롭게도 천 전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이종백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구속 수사 방침을 보고한 날과 같은 날 수사지휘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종빈 전 총장은 천 장관의 서면 수사 지휘를 수용하긴 했지만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항의하며 사퇴했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10월 17일 퇴임식에서 "저의 결단(사퇴)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이루는 작은 주춧돌이 되고, 검찰 가족 여러분들의 상처 난 자부심과 명예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후 15년간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7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전 대통령)이 소집을 결정한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한 전문수사자문단(자문단) 절차 중단, 수사팀의 수사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수사지휘를 내렸다.

추 전 장관은 임기 1년간 총 두 차례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는데, 지휘받은 당사자 모두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었다.

추 전 장관은 물론 청와대와도 크게 갈등하던 윤 전 대통령은 결국 2021년 3월 총장직에서 스스로 내려온 후 이듬해 대선에서 당선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을 하고 있다. 2025.11.14/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추 장관에 이어 취임한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은 재임 중이었던 2021년 3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역대 네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총 네 번의 수사지휘권 사례 가운데 세 번이 문재인 정부에서 발동됐던 셈이다.

총장 시절 두 차례나 수사지휘를 받았던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실제로 폐지되지는 않았다.

수사지휘권과 관련해 '비선출 권력에 대한 통제 장치'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검찰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1심 항소 포기를 둘러싸고 외압 의혹이 나오자 검사들이 집단 반발한 것도 검찰 수사의 독립을 침해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았으며,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노 전 대행에게 수사지휘권을 시사했는지 여부도 미궁에 빠진 모양새다.

노 전 대행은 항소 포기와 관련해 '용산 대통령실이나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했다'면서 사실상 이 차관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0일 대검 소속 과장(부장검사급)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이 차관으로부터 '항소 포기' 선택지를 받고 수사지휘권이 발동될 가능성을 고려해 항소 포기 결정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 차관은 '(항소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라'는 정 장관의 의견을 전했을 뿐이며 노 대행과의 통화에서도 '수사지휘권 행사는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대검과의 의사소통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전제한 뒤 "총장 대행에게 전화한 것은 맞지만 (수사) 지휘권 발동이 아님은 분명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다만 정 장관의 '신중히 판단하라'는 의견이 이 차관을 거쳐 노 전 대행에게 전달됐다면 서면 형식으로 정식 수사지휘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사실상 비슷한 수준의 압박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 전 대행은 지난 14일 퇴임식에서 20년 전 수사지휘권에 반발해 사퇴한 김 전 총장처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언급했다.

노 전 대행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과 관련해 "검찰 구성원들이 검찰의 기능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를 내부적으로 전한 것임에도 이를 항명이나 집단행동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검사들에 대한 징계 등 논의는 부디 멈춰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