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ES'와 'G'의 결별
김화진 미시간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
기업은 환경과 사회를 배려하고 주주들뿐 아니라 회사 안팎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도 염두에 두면서 경영해야 한다.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취지다. 그런데 ESG는 표현을 어떻게 하든 역사가 매우 오래된 이념이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47년 미국에서 2명의 사회운동가가 운송회사 그레이하운드가 인종분리 방침에 따라 남부지역 노선에서 좌석을 분리 운용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그레이하운드 주식을 새로 산 다음 회사의 주주총회에 회사의 인종분리 방침을 철폐하라는 주주제안을 제출하려고 시도했다. 회사가 주주제안 상정을 거부하자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Peck v. Greyhound). 판결문에는 원고가 주식 3주를 보유했다고 나온다.
이 소송은 1951년에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의 개입으로 기각됐다. SEC가 원고의 청구가 부적법하다는 주주제안 관련 규칙 해석을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SEC는 이듬해(1952년) 상장회사 주주제안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서 "인종, 종교, 또는 그 외 유사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주주제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ESG가 다시 기업 경영에 중요한 이념이 된 것은 2020년 무렵이다. 세계 최대의 투자자인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이 ESG 글로벌 전도사로 나서면서 급격히 확산했다. EU를 필두로 세계 각국 정부도 그에 호응해서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자본시장 참여자들 모두가 이해해야 하는 필수 이념이 됐다. 물론 워런 버핏이나 일론 머스크같이 회의적으로 보는 인물들도 적지 않았고, 미국의 보수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사회 한쪽에서 못마땅하게 서 있던 ESG 회의론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급격히 강세가 된다. 그동안 ESG,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효율성도 문제지만 사회적 갈등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관련된 사업과 인력에 거액의 국고가 투입됐다. 트럼프는 이념과는 별도로 그 모든 사업이 낭비적이고 적지 않은 불법과 횡령을 발생시켰다고 본다. 그러자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이 줄줄이 ESG를 '권고적' 지침으로 전환했다.
필자가 2021년 초에 쓴 'ESG,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까'라는 칼럼이 있다. 그렇게 되는 추세다. 2025년 주주총회 시즌이 마감되고 모닝스타에서 집계해 봤더니 ESG 관련 안건 전체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E&S의 경우 20%에서 16%로 하락했다. 블랙록, 뱅가드 등 미국 6대 기관투자자들이 2021년에 E&S 관련 의안을 46%로 지지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2025년에는 18%에 그쳤다.
주의할 점은 E&S와 달리 G와 관련된 안건들의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투명경영, 경영효율 등의 가치를 반영하는 G는 정치와 크게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기업 조직과 운영에 관련된 항목이어서 정치·사회 변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G 관련 의안이 채택된 비중도 35%로 전년과 거의 같았다.
이 모든 변화를 트럼프 행정부 등장과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을 위시해서 범세계적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정치·경제 환경이 바뀌고 있는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자유무역이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고 외교정책의 수단이었지 경제정책이 아니었다는 것이 현 미국 집권세력의 생각이다.
트럼프 1기 때는 중국과 합의를 통해 무역 관행을 바꾼 뒤에 다시 자유무역으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래서 2기에는 중국과 협상하지 않고 각자 따로 가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무역적자 증가와 고용 감소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서는 '착한 척'의 대명사 E&S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정치와 외교가 바뀐 결과는 숫자로 바로 드러난다. 국내에서도 비슷하게 방향이 조정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E&S와 달리 G는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대내외의 정치·사회적 환경 다음으로 기술, 인재, 지배구조 3박자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3박자를 통한 기업의 성공이 정치사회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
opini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