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檢개혁]②'무혐의' 뒤집힌 흑역사…기소 독점이 성역 못 막았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 2013년 논란 이후 기소까지 6년
김건희 도이치 의혹, 4년 6개월만에 檢 '무혐의'…특검은 기소
- 남해인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김학의 사건 자체도 부끄럽지만 과거 검찰의 두 차례 수사에서 왜 이걸 밝혀내지 못했는지가 더 부끄럽습니다. 검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2019년 6월 25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김건희 측 변소와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인식과 역할 분담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증거도 많이 확보됐습니다."(2025년 8월 29일 민중기 특별검사팀 관계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의 흑역사는 늘 반복됐다. 검찰권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부부 등 그들만의 성역을 비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자, 정권이 교체된 뒤 '검찰 개혁'은 오히려 검찰에 의해 탄력을 받게 됐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은 검찰의 늑장수사와 불기소로 사법부의 판단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3년 3월 속옷 차림의 남성이 한 여성과 노래를 부르다 성관계를 갖는 동영상이 폭로되며 해당 사건이 알려졌다. 당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영상 속 남성으로 지목됐고, 그에게 성접대를 한 인물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 알려졌다.
성접대 동영상을 입수한 경찰은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확정하고 김 전 차관 등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성접대 당시 특수강간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이 직접 김 전 차관 등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이마저도 무혐의 처분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로 검찰이 김 전 차관 사건을 다시 수사했다.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는다며 성접대를 포함한 뇌물수수 혐의로 그를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대부분 혐의가 공소시효가 지났고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그의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의 늑장수사로 그의 혐의를 제대로 판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찰이 수사권과 함께 가진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는 이런 흑역사가 반복된 원인으로 꼽힌다.
기소독점주의는 검찰이 기소권을 홀로 가지고 있는 현행 제도를, 기소편의주의는 검사의 재량권에 따라 기소 여부가 결정되는 제도를 말한다. 이같은 검찰의 기소권뿐만 아니라 불기소권도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막강한 권한으로 꼽힌다.
외국에는 기소권과 불기소권을 쥔 검찰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마련돼 있다.
미국의 연방 대배심제나 일본의 검찰심사회 등 검찰의 기소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거나, 기소 의견을 냈는데도 검찰이 불기소할 경우 추가 심사를 거쳐 기소를 강행할 수 있는 제도들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심의 결과에 강제력이 없어 상대적으로 '맹탕'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같은 제도는 또 다른 성역이 만들어지는 데 활용됐다. 지난달 29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민중기 특검팀의 기소가 이뤄지며 수사 결과가 뒤집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검팀은 김 여사가 2010년 10월~2012년 12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계좌 관리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과 공모해 주가조작으로 8억 1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동안 김 여사 측이 주가조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돈을 대는 '전주'(錢主)에 불과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공소장에 김 여사는 '공범'으로 명시됐다.
김 여사에 대한 기소는 2020년 4월 당시 열린우리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고발한 지 5년 4개월 만에 이뤄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사퇴(2021년 3월)한 이후인 같은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한국거래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이상 거래 내역을 확보하고, 도이치모터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2021년 10~12월 권 전 회장 등 일당 15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김 여사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빠졌다.
게다가 이듬해 윤 전 대통령이 제20대 대선에서 당선되며 김 여사를 향한 수사는 멈춰 섰다.
그러다 2024년 7월에서야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이뤄졌지만 검찰청사가 아닌 외부 장소에서 비공개로 이뤄진 게 알려지면서 특혜 논란만 초래했다. 나아가 지난해 10월 검찰은 수사 착수 4년 6개월 만에 김 여사가 주가조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면서 서울고검이 재수사에 착수했고, 지난 7월 특검팀이 넘겨받아 수사한 끝에 김 여사에 대한 기소가 이뤄졌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지하고, 공모한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던 기존 검찰 발표와 달리 특검팀은 "김건희 씨가 단순 전주가 아니라 충분히 공모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지지부진하던 검찰 수사와 달리 특검팀이 수사 개시 59일 만에 김 여사를 구속하고 재판에 넘기면서 검찰은 '봐주기·뭉개기 수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여사에 대한 특검의 기소로 여권이 추진 중인 '검찰 개혁'에는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전날(7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검찰개혁안이 담긴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의 입법이 완료되면 7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검경' 수사 체계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경찰청 국가수사본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를 분담하고, 공소청이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체제로 개편될 전망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중수청 설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등 세부 쟁점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수사·기소 분리'는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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