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상황에 요청합니다"…10만원으로 서민 목숨 살리는 '홍길동은행'

무상 긴급생계지원으로 위기 처한 서민들 지원
[인터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왼쪽). 오른쪽은 임세은 전 청와대 부대변인 .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지금은 저녁 한 끼 해결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입니다…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을 요청드립니다."

흔히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다'고 말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의 휴대전화와 이메일에는 내일을 살아가려면 지원을 간절히 필요하다는 연락들이 쌓인다. 그가 지난해 '홍길동은행'을 개소한 뒤 날마다 겪는 일이다.

홍길동은행은 생계 위기에 놓인 시민들에게 1인당 10만 원의 긴급생활비를 지원하는 민간 비영리기금이다. 뉴스1은 은행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민생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안 소장을 만났다. 안 소장은 이날 감기까지 겹쳐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도 단체 운영을 위한 홍보·모금활동을 위해 일정을 빽빽하게 채워놓고 있었다.

가난한 민초들을 구하겠다는 홍길동의 '활빈(活貧)' 정신을 계승해 만들어진 홍길동은행은 2024년 4월부터 지원활동을 시작했다. 폐업, 파산, 체불임금 등의 수치가 최고치를 찍고 서민경제가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한 줄기 가는 동아줄이라도 마련해 보자는 것이 은행 설립의 이유다.

"서민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안 소장의 불안한 분석은 그대로 들어맞아 지원을 시작한 시점부터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9차례의 정기지원과 중간중간 실시한 상시지원에 1만 5842명이 신청했고 그중 2797명이 지원금을 받았다. 장난으로 보이는 허위 사연 등을 제외하고 신청자 대부분을 돕고자 했지만 재원의 한계로 순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홍길동은행이 무상으로 돈을 내주는 이유는 결국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다. 안 소장은 홍길동은행을 찾는 이들이 "당장 죽게 생긴 사람들"이라며 "이들에게 당장의 고비를 넘길 지원이 없으면 결국 절도를 하거나 더 모진 경우 자살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18년 4만 583건까지 줄어들었던 10만원 이하 소액절도 범죄 건수는 이후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해 10만 7138건으로 6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2017년 24.3%였던 자살률은 2023년 27.3%로 올랐다. 시민들의 삶이 한층 팍팍해졌음을 보여준다.

'무상으로 돈을 받기 위해 허위로 사연을 꾸며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 소장은 "100명 중 한두 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애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을 받는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무상지원이 근로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10만 원을 받으려고 일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히려 안 소장은 긴급 생활비 지원이 재기의 발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죽음과 절망뿐인 상황에서 홍길동은행 덕분에 취업에 성공하거나 일을 하게 돼서 살게 됐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며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10만 원의 지원이 아니라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소장이 요즘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다. 그는 이런 옛말은 봉건왕조 시대에나 맞는 것이라며 "현대 문명국가라면 가난을 정부가 나서서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홍길동은행 같은 모델이 확대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연계된 사업을 추진한다면 정말 가난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길동은행의 지원자 선정과 장학금 지급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감정평가사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안 소장의 주된 역할은 지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홍길동의 정신을 계승했지만 현대사회에서 '의적질'을 할 수는 없기에 홍길동은행의 재원은 안 소장의 개인 유튜브 채널 TV 수익금과 기부금으로 충원된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 기부자가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홍보를 위해서는 안 소장이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이날도 그의 휴대전화로는 상시지원 요청이 3600명가량 누적됐다는 연락이 왔다. "큰일 났네요. 큰일 났어. 알았어요. 제가 돈 벌어올게요. 돈은 어떻게든 모아오면 되죠. 탈락자를 최소화해서 다 뽑아주세요." 27년차 사회활동가이자 이제는 50대에 들어선 안 소장은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potgu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