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차 후 일어나 하차" 안내 무색…여전히 미리 일어서는 승객들

"문 빨리 닫힐까 봐", "다른 승객에게 피해 줄까 봐"…다양한 이유 있어
버스 기사들 "고령층일수록 미리 일어나는 경우 많아"

서울의 한 버스 내부 모습. '정류장에 정차하기 전에 절대 일어서지 마십시오'라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2025.8.3/뉴스1 ⓒ News1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강서연 기자

나이 드신 분일수록 더 빨리 일어나세요.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늦게 내리셔야 한다’고 해도 잘 안 지켜지죠.

버스 기사 손만성 씨(60·남)는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나 달라는 안내를 지키지 않는 승객들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 씨는 "정차한 다음에 일어나시라고 손님께 말씀드리면 '빨리 내려 드리려고 그런다' 하신다"며 "그러면 오히려 더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버스에 탑승하면 '승객 여러분, 하차하실 때는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흔히 듣지만, 실제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 급하게 하차하려는 승객들이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안전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스 곳곳 안내문·안내 방송에도 불구...'미리 일어나 하차 준비'

지난 5일 뉴스1이 12대의 버스를 타 본 결과,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버스 곳곳에 부착돼 있음에도 대부분의 승객은 자리에서 미리 일어나 하차를 준비했다.

승객들이 버스 정차 전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했다.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나 하차하면 다른 승객과 버스 기사에게 오히려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빨리 일어나는 시민들이 많았다. 최순관 씨(61·남)는 "정차하고 일어나면 늦지 않나. 다른 분들한테도 피해를 드린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마음이 좀 든다"라며 "전체를 위해서 그게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도영 씨(26·남)는 "그냥 미리 준비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정차 후에 일어나라는 안내를 몰랐다며 "(버스가) 빨리 출발하라고 (미리 일어난다)"라고 답했다.

버스가 멈춰 선 후 일어나 내리려다 보면 문이 닫혀 하차하지 못할 수 있어 미리 일어난다는 승객도 있었다.

박혜련 씨(37·여)는 "버스가 문을 빨리 닫으니까 내려서 문 앞에 나가 있는 편"이라며 "사람이 많으면 헤치고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문이 닫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 정차하기 전에 먼저 나가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하차 벨을 누른 후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문 앞에 도착한 순간 문이 닫히려 했다. 급하게 '내릴게요'라고 말해 겨우 하차할 수 있었다.

버스 기사들 "고령층 미리 일어나는 경우 많아"...사고 위험 높아 우려

시민들은 빠른 하차가 나름의 '배려'라고 하지만 사고의 책임 주체로 지목당할 수 있는 버스 기사들은 안전하게 시민들이 하차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버스 내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버스 기사들은 경찰 조사에 숱하게 불려 간다. 넘어져 다친 승객이 버스공제조합을 통해 치료비를 받으려면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버스 내부에서 일어나는 넘어짐 등의 사고는 고령층에서 많이 일어나는 만큼,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어 기사들의 걱정도 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버스 관련 위해 사례 428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인 219건(51.0%)이 상대적으로 거동이 민첩하지 않은 60대 이상의 고령자에게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해 원인으로는 '미끄러짐/넘어짐'이 282건(65.9%)으로 가장 많았다.

버스 기사 A 씨(45·여)는 승객들이 정차 전 미리 일어나 있는 경우가 많냐는 질문에 "어르신들이 좀 많이 그러신다"며 "제 생각에는 어르신들이 행동이 느리신 경우가 있다 보니 빨리 내리시려고, 피해를 안 주시려고 미리 일어나시는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더 안 좋다.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버스 정차 전 미리 자리에서 일어난 B 씨(75·여)는 "내가 행동이 빠르지도 않고 여기가 집이니까 잘 알기 때문에 먼저 일어났다"고 말했다. B 씨는 '위험할 수 있는데도 먼저 일어나 있어야 마음이 편해서 그러시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전문가들 "여유 있는 하차 기다려주는 문화 필요"…고령층 대상 안전 교육 강화 촉구

전문가들은 여유 있는 교통 문화의 정착과 고령층에 대한 안전 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일본 같은 경우는 아주 엄격하게 한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승객들이 일어나서 내린다"라며 "배차 시간을 여유 있게 주고 관련 법 시행령이나 규칙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지켜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은경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교수는 "기사분들은 배차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정차 시간을 맞추시려고 문을 빨리 닫고 빨리 움직이셔야 하고, 반대로 또 승객분들은 그 시간에 맞춰 내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으니까 기다렸다가 내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 맞물린다"며 "정류장에서 조금 여유 있게 정차를 하고 승객들이 내리고, 그다음에 또 다른 승객이 타는 것을 기다려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제도적으로 갖춰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고령층에 대해서는 "어르신들도 벨을 미리 누르시고 차가 멈추면 일어나도 된다는 것을 좀 더 인지하셨으면 좋겠다"라며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에서 그런 것들을 교육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ks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