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려면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서울=뉴스1)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새 정부가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방 국립대 총장 출신이면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분이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어, 새 정부의 공약 집행 의지가 강력함이 확인되었다.

필자도 과거부터 계속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이 공약이 제대로 실현되어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이 공약이 성공적으로 실현될지에 대한 걱정도 크다. 걱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약 실현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이고, 다른 하나는 “공룡 조직이 되어버린 서울대를 이대로 10개로 늘려도 괜찮을까”이다.

사실 해답은 걱정 안에 이미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은 모델인 서울대를 먼저 스마트한 조직으로 혁신하여 재편하는 것이고, 그렇게 스마트해진 서울대라면 10개로 늘리는 데 재원도 덜 들고, 지역 단위로 자생력을 확보할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는 관건은 모델인 ‘서울대’가 정말로 본받을 만하게 바뀌는 것이고, 그런 모델에 따라 각 지방에 육성되는 ‘서울대들’이 해당 지역 발전의 중추로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위의 선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로 추진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잘 보여주는 사례를 이미 알고 있다. 로스쿨과 의대다. 문과생의 로스쿨, 이과생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로스쿨과 의대는 어느 곳에 있든 지역이나 속한 대학과 별개로 ‘명문대’가 되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이른바 ‘인 서울 명문대’를 마다하고 지방 주요 대학의 로스쿨과 의대에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대학 및 해당 지역의 발전, 나아가 국가의 종합적 발전과 거리가 멀었다.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다시 썰물처럼 서울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그 대학과 해당 지역의 쇠락은 오히려 더욱 빨라졌다. 해당 지역에 정착하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떠나는 인재를 잡을 수가 없다.

정부가 지방 주요 대학에 아무리 재원을 많이 투입하여 서울대에 버금가는 지원을 해도, 위의 선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모델인 서울대를 공룡 조직에서 스마트한 조직으로 혁신한다는 걸 전제로, 지방 주요 국립대를 서울대처럼 만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방안은 무엇일까? 그 해답도 새 정부가 제시한 공약에 이미 들어있다.

지난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하여, 울산에 건립되는 AI 데이터센터가 “지방 경제와 산업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주는 일”이 되고 “첨단기술 산업이 지방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AI를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을 특히 지방 발전과 연계한 건 의미 있는 일이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니, 동남해안의 원전이나 전남북의 태양광 등 주요 전력 공급원이 있는 곳 근처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건 합리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설치만으로 지방 경제 활성화나 지방의 첨단기술 산업 발전이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라는 효과를 내려면 그 AI 데이터센터를 활용하여 첨단기술 산업을 실행할 주체들, 즉 기업과 인재들이 해당 지역으로 들어와서 정착하고 창업해야 하고, 그렇게 사업에 성공한 후에도 떠나지 않도록 이들을 뒷받침하는 생활과 문화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 같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는 종합 플랫폼이 있으니 그게 대학이다.

대학은 첨단기술 창업에 최적화한 젊은 인구(다른 지역은 물론 심지어 해외의)를 끌어들이고,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를 공급하여 도전적 혁신의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 지방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해당 지역에서 문화와 소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심지어 주요 지방대에 모두 있는 부속 종합병원을 통해 의료 안전망도 제공한다.

젊은 세대가 지방에 정착하여 살기를 꺼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화공간 및 생활 인프라 부족,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플 때 빠르게 찾아갈 종합병원 부족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 주요 대학은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종합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각 지방에서 스마트해진 서울대급으로 지원을 받는 주요 대학의 이런 잠재력에 최신 GPU를 갖춘 AI 데이터센터가 결합한다면, 그래서 그 AI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는 기업이 해당 지역에 들어오고, 그 대학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신기술 창업에도 나서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AI는 진정으로 지방 경제와 산업의 희망이 될 것이다.

이런 희망을 실현하려면 각 지방과 대학에 구체적으로 무슨 지원이 필요할까? 우선 지역의 전력 공급원과 AI 데이터센터, 지역 중심 대학을 연결할 전력망이 정비되어야 한다. 국토 전체의 전력망이 부족해서 지방에서 생산된 전기가 서울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는 게 문제지만, 지역 차원의 안정적 전력망 구축도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AI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지역 차원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데이터 축적과 기존 데이터를 활용한 사업화를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가 있다면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국내에 최신 GPU가 부족하다고 질타하는 뉴스가 자주 보도되었는데, 이미 있는 GPU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비싸게 투자해서 지방에 AI 데이터센터를 지어놓고 그걸 해당 지역의 중심 대학, 기업, 인재들이 자유롭게 쓸 수 없게 하는 관료적 폐단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타파해야 한다. 철저하게 수요자의 시각에서 보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청년세대가 지방의 ‘서울대’를 나와서 그 대학 근처에 정착하고 창업하여 지역 경제 발전의 주축이 되게 하려면, 생활과 문화의 수요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결혼해 아이 낳고 키우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그 지역에 양질의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일, 대학 캠퍼스와 그 주변을 서울 대학로처럼 공연장과 전시장이 밀집한 종합 문화 공간으로 정비하는 일 등도 생각해 볼 만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가장 필요한 건 물론 돈이지만, 돈만으로 이 계획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창조적이고 유연한 발상, 그리고 정부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교육부만의 일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