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블랙리스트 유죄' 전공의 비호한 의사단체…피해자 안 보이나

지난해 7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4.7.21/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헛짓거리 그만하고 의사 선생님들 그만 괴롭히길 바란다."

서울 소재 '빅5 병원' 영상의학과 소속이던 30대 사직 전공의 류 모 씨. 그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시도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 집단 휴학 사태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감사한 의사 블랙리스트'를 게시하면서 수사기관을 향해 이같이 선언했다.

류 씨는 자신처럼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된 다음날 블랙리스트에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며 더 이상 업데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2달 뒤 류 씨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이 파악한 피해 규모는 약 2900명이다. 해당 블랙리스트에는 개인정보를 비롯해 이성 문제 등 확인되지 않은 인신공격성 내용들이 함께 담겼다.

류 씨 측은 재판에서 기본적인 공소사실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범행이 명예훼손과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 일부에게 처벌불원서를 받았다며 공소기각을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임혜원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류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류 씨가 익명성에 숨어 피해자들의 의사를 반한 채 반복적으로 개인정보를 배포·게시한 것이 상대방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기 충분하고,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것을 영원히 비난할 목적으로 명단을 유포했다고 판단했다. 스토킹처벌법상 범죄 구성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류 씨가 피해자의 비방성 내용을 달리 확인하지 않았고 당사자 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배포했다고 봤다. 이에 더해 류 씨가 여러차례 반성문을 냈지만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치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통렬한 자기반성을 가졌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벌금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신원 노출이 두려워 재판 방청을 못 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블랙리스트 피해 사실을 제보한 전임의 A 씨는 그간 류 씨 재판을 주시했다. A 씨의 트라우마는 여전했다.

류 씨 선고 당일 A 씨는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지 않길 바랐다. 후련하면서도 찝찝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 의사단체에서 징역형을 받은 류 씨의 범행을 비호한 것에 분노를 표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료계 내부 표현의 자유와 공익적 문제 제기의 권리를 침해한 과도한 형사처벌"이라며 "추후 항소심에 필요한 모든 자료 지원과 전략적 자문을 제공할 것"이라며 류 씨 지원을 선언했다. 다른 지역 의사단체들도 류 씨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법은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지고, 위반 행위에 대한 철저한 응보와 예방의 기능을 부여받는다. 법을 위반한 행위자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대의제를 통해 만든 사회적 합의와 법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필요성과 그 과정의 부당성 등 평가는 개인 판단의 문제다. 다만 저항이 정당하다고 위법한 행위를 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의료계가 말하는 '무도한 개혁'을 시도한 윤 정부는 이제 없다. 이제는 2900여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범행을 두둔하는 '헛짓거리' 대신 국민 건강을 위해 새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