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고교 동창 죽이고 "난 가방모찌 수모"…새빨간 거짓말 이유는?

강남 술집서 동업자 살해 "학교 폭력 복수" 둘러대 [사건속 오늘]
온천리조트 인수 싸고 갈등…피해자가 투자금 상환 요구하자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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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새는 궁하면 아무것이나 쪼아 먹고 짐승은 궁하면 사람을 해치게 되며 사람이 궁하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30년 전 학교폭력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지자 모욕감에 고등학교 동창을 살해했다던 40대 남성의 거짓말, 진짜 이유는 '돈'이었다.

◇30년지기 친구에 흉기 휘두른 남성 "나는 가방 모찌였다"

2011년 3월 31일 오전 11시 25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술집에서 고등학교 동창 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부동산중개업자 유 모 씨(당시 47)가 30년 지기이자 동업자인 이 모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것이다.

유 씨는 자신과 이 씨의 관계를 마치 '일진과 셔틀'로 비유했다. 30년 전부터 이 씨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고, 최근에도 동업하면서 모욕적인 언행을 듣고 부당한 요구를 받자 참을 수 없어 살인하게 됐다고 했다.

유 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를 때리며 돈도 빼앗았다. 책가방을 들게 하고 심부름도 시켜 나는 사실상 '가방 모찌'(가방 셔틀)였다. 졸업 후에도 날 괴롭혔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는 숨진 이 씨가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온천 리조트를 유 씨와 공동 인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봤다.

이 씨가 약정금 1억 원을 치르고 따내고 유 씨에게 잔금 399억 원을 내도록 강요했으며, 이때 유 씨는 잔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씨에게 상습적인 구타와 모욕을 당했다고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인 유 씨가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씨에게는 "죽어도 싸다"는 비난, 유 씨에게는 동정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유 씨의 주장은 술집 CCTV가 공개되면서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CCTV 속 드러난 진실…투자금 10억 원 반환 요구에 '계획 살해'

유 씨는 우발적 살인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계획 살인이라며 술집 CCTV 화면을 증거로 제시했다.

CCTV에는 유 씨가 미리 준비한 30㎝짜리 흉기로 이 씨를 33차례 찔러 살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지어 유 씨는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이 씨를 한 번 더 찔렀으며, 숨진 이 씨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여유까지 보였다.

증인 조사 과정에서도 유 씨가 학창 시절부터 이 씨에게 괴롭힘당했다는 이야기가 거짓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이 수백억 원 규모의 온천 리조트 인수 계약 문제로 얽혀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유 씨는 법정에서 "이 씨와 함께 한 온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 씨가) '온천 인수 건이 무산되면 너와 아내, 그리고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정신적 고통을 받아 이 씨를 죽였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유 씨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유 씨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그는 이 씨에게 온천 계약금으로 9억 6000만 원을 건네받았다. 이후 유 씨는 이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1억 원의 손실을 봤다.

더 이상 손실된 금액을 보존할 방법이 없게 된 상태에서 이 씨가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고 하자, 유 씨가 이 씨를 살해한 것이다.

나아가 유 씨는 이 씨를 죽이고 경찰에 체포된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증권 계좌에 남아 있던 3억 4000만 원을 자신의 동생들 계좌로 빼돌리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유 씨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만난 아내에게 "주식 손실 때문에 죽였다고 그러면 나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야", "주식 손실금 1억 원 때문에 죽였다고 하면 안 되니까 공탁해야 한다" 등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母 기일 날 '한' 풀었다…法 "반성 의심" 징역 23년 선고

검사는 "이번 사건이 '가방모찌의 반란'이 아닌 금전 문제에서 비롯된 계획적 범행으로 엄벌이 필요하다"며 유 씨에게 무기 징역을 구형했다.

2011년 7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영훈)는 유 씨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동업 과정에서 스트레스받은 점은 인정되지만 구타나 폭행을 당했다는 입증에 소명이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어떤 사유에서도 생명을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박탈한 것은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유 씨를 꾸짖었다.

이날은 이 씨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이 씨의 형은 형사, 검사 그리고 재판장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 씨 형은 "오늘에서야 어머니 볼 면목이 생겼다. 어머니가 분명히 기뻐하실 것"이라며 마침내 한을 풀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