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구하라 떠난지 4년…악플은 '표현의 자유'인가[악플러의 동굴]④

10명 중 7명 '인터넷 실명제' 찬성…계속되는 '악플의 밤'
'위헌' 판결로 실제 도입 한계…"현행법상 처벌 강화해야"

편집자주 ...악플러는 영미권에서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이라 불린다. 트롤은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대부분 동굴에 살고 있다. 트롤은 인간을 공격하지만 햇볕을 쬐면 돌이 되거나 터진다. '현실 세계' 속 트롤도 양지가 아닌 음지를 지향한다. 악플러들이 온라인에 적어 올린 글은 흉기가 돼 누군가의 삶을 위협한다. 이들은 왜 악플을 다는 걸까. <뉴스1>이 직접 만나 악플러들의 '이중생활'을 들어봤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조현기 김예원 기자 = '가시밭길.' 가수 설리(최진리)가 생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단어다. 당시 악플에 대한 심경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다.

최근 설리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르소나:설리'의 공개가 4년 만에 확정되면서 설리를 괴롭혔던 악플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2009년부터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로서 한류를 견인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던 설리는 활동 기간 내내 악플에 시달렸다.

◇"내 생활은 구렁텅이인데 바깥에서는 밝은 척"

설리는 2014년 악플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활동을 중단했고, 2015년 자신이 몸 담았던 에프엑스를 탈퇴했다. 이후 2019년 한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해 악성 댓글로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설리는 "내 생활은 구렁텅이인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한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악플 등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설리는 결국 2019년 10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와 친했던 구하라도 이후 한 달만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구하라도 악플의 대표적인 피해자로 알려졌다.

설리·구하라를 떠나보낸 지 4년이 됐으나 '악플러의 밤'은 계속되고 있다. 악플 피해자들은 "댓글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회의적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른바 '설리법'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실명제' 법안은 물론 악플을 막거나 악플러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란 이용자의 실명과 신분이 확인돼야 온라인 공간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를 뜻한다.

그룹 f(x)(에프엑스) 출신 배우 故 설리(최진리)의 사망 1주기인 14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 추모 광고가 게재되어 있다. 2020.10.1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위헌 결정으로 법 만들거나 집행하는 데 한계"

인터넷 실명제 여론은 대체로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6월19~21일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68.2%)이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했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에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당시 표현의 자유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전공)는 "헌재 위헌 결정이 나면 국가 기관은 위헌 결정에 반하는 내용을 법으로 만들거나 집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관계자도 "위헌 판결로 인해 정책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행동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입법부에서도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플 근절 방안을 담은 법안들이 모두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이용자의 아이디 IP주소를 함께 표시하도록 돼 있는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 내용을 담고 있는 '박대출 의원안', 온라인상의 혐오·차별표현 등 모욕에 대한 죄에 대한 신설을 담은 '전용기 의원안', 비방 및 혐오 표현 등이 포함돼 있는 불법정보 삭제를 담고 있는 '이상헌 의원안' 등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뉴스1과 인터뷰에서 "2012년 헌재 판결은 악플 규제가 위헌이라는 것이 아니고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며 "제가 발의한 법은 친고죄 삭제, 악플 삭제요구권 등은 표현의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피해자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간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선 "가보지 않은 길이라 생각이 다양한 것은 이해된다"면서 "법안 통과를 위해 전문가들과 논의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故 구하라씨 ⓒ News1 권현진 기자

여기에 대해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튜브 등 서버를 해외에 둔 외국 플랫폼 업체에는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해외나 VPN 등으로 우회해 악플을 남긴 경우에도 처벌이 어렵다.

포털 관계자는 "해외에서 접속하거나 VPN를 써서 우회한 경우 100% 잡긴 힘들다"면서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VPN 사설 업체를 다 관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문가들 "명예훼손 등 법 조항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헌재 위헌 판결 등으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어려운 만큼 현행 법체계에서 악플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누군가에게 악플을 남겼는데 벌을 받는 기준과 사례가 없으면, 아마 5년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우리는 이 대화(악플러를 막기위한 대안)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넛지 효과가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악플러를 추적해서 그 사람이 결국엔 처벌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현행 법 체계에서 처벌을 할 수 있는 '명예훼손' 법 조항을 강화해 대응하자고 제언했다.

김정중 변호사(법무법인 하신)은 "현행법상 악플, 명예훼손은 처벌이 매우 약하다"면서 "통상적으로 매우 적은 수준의 벌금형이 선고되고, 고소를 통해 상대방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악플러들의 처벌 강도가 너무 약하고, 처벌을 당했다고 사회 생활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choh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