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통째 이전' 가능할까…'제2의 가든파이브' 안 되려면
[문래동 소공장] ③700곳만 옮겨도 이전 부지 찾기 쉽지 않아
아파트형 공장 지으면 청계천처럼 될 수도…철공소와 안 맞아
-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박동해 기자,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박동해 이정후 기자 = 서울 영등포구가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의 통째 이전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풀어야 되는 문제는 많다. 영등포구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한 결과 약 1300곳의 업체 중 700개가 넘는 곳이 이전에 찬성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이전에 관심이 없다는 업체들은 사전 조사가 이전을 원하는 곳 위주로만 이뤄졌다고 말한다. 특정 업체들은 사전 조사를 보지도 못했다는 곳도 존재한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통째 이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옮겨갈 장소가 있느냐는 것이다.
◇ 떠날 수 없는 사람들…"나가라고 하면 이젠 그만두는 거죠"
문래동은 1990년대 한때 철공소와 관련 업체만 25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 남아있는 1300곳도 적지 않은 수치지만 최근 임대료 상승과 개발 압력으로 적지 않은 업체들이 이곳을 떠났다.
경쟁과 임대료 상승을 버티고 남을 업체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데 재개발이 이뤄진다면 다수의 업체는 이전보다는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 1300곳 중 90% 이상이 임차 공장이기 때문이다.
문래동에서 금속 정밀업체를 운영하는 김학기씨(58)는 재개발 때문에 공장을 비워야 한다면 가게를 접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가라고 하면 당장 갈 곳도 없고 이전 부지가 있어도 거기가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일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며 "이제는 폐업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문래동이 업체들이 하나의 공장처럼 얽혀있는 점도 이들이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금형 업체를 하는 김성욱씨(72)는 "거래처가 여기를 찾는 이유는 여기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전한다고 다 찢어놓으면 일이 돌아가겠느냐"고 반문했다.
문래동 창작촌에 정착한 예술인들도 떠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곳에 정착한 예술인들은 서울 홍대와 성수 등 여러 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으로 인해 이동과 이동을 거듭한 예술인도 다수다.
문래동에서 만난 한 젊은 예술인 이모씨는 "여러 번 옮겨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이제는 이곳에 머물고 싶은 생각이 많다"면서도 "임대료가 앞으로 더 오르면 버틸 재간은 없다"고 말했다.
◇ 청계천의 기억…'제2의 가든파이브'가 되지 않으려면
문래동 이전에 집적지 이전을 겪은 곳이 있다. 바로 청계천이다. 문래동에는 청계천을 떠나 간신히 자리를 잡은 업체들이 꽤 있다.
다만 당시 많은 업체는 서울시가 대안으로 내놨던 송파구 장지동의 가든파이브를 선택했다. 하지만 가든파이브 입주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입주 때 지불해야 했던 임대료가 대폭 상승했고, 아파트형 상가는 금속을 다루는 청계천 업체들과 애초에 쓰임새가 맞지 않았다.
실제로 18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가든파이브에 남아 있는 공장은 많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가든파이브는 문래동과 같은 제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재개발이 기존의 산업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대체 부지를 찾는다고 해서 기존 장사를 똑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막연함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전 대책이 미흡했던 청계천 상가나 대방동 산업단지의 경우 상인들이 업체를 운영할 곳을 찾아 빙빙 도는 현상이 허다했다.
◇ 1300개 업체가 이전할 부지가 있을까
이전이 실제로 결정돼도 문제는 남아 있다. 1300곳 중 700곳의 업체만 이전을 한다고 해도 이들이 정착할 부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대부분 아파트형 상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가든파이브와 마찬가지로 철공소에는 맞지 않는 상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속 정밀업체를 운영하는 김영복씨(64)는 "이전을 한다면 아마 아파트형 공장이 될 것인데 누가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 하겠느냐"며 "여기 대부분의 업체가 공장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고 두드리는 작업부터 하는데 아마도 아파트형 공장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용접 업체를 운영하는 김종철씨(65)도 "자제를 내리고 올려야 하고 일이 두세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여기 문래동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도 인기가 없는데 누가 그런 곳에서 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우선 용역을 통해 적합한 이전 후보지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사업비와 업체별로 이전 수요를 다시 조사, 자문단을 구성해 용역을 마치는 대로 내용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sanghw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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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는 1200곳이 넘는 '문래동 철공소'를 통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래동 철공소는 사실상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속가공제작 집적지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장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임대료 상승과 개발 압력 등으로 지속적인 이주 압박을 받다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운명까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뉴스1은 40여년간 문래동에서 일을 해온 소상공인들의 사연과 철공소 이전의 직접전 원인인 젠트리피게이션, 또 통째 이전은 실제로 가능한지 3편의 기획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