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선풍기 틀기도 무서워”…판자촌엔 벌써 여름나기 걱정 한가득

낮 최고 34도…'화훼마을' 주민들 "전기료 지원 그림의 떡"
"비오면 집들이 물에 떠"…폭염 이어 장마철 홍수까지 걱정

때이른 더위가 찾아온 17일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 모습.ⓒ 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전기세마저 올라 선풍기 틀기도 두려워요"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서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 판자촌엔 때이른 찜통더위가 찾아왔다. 17일 오전에 방문한 화훼마을엔 주민 5명이 처마 그늘 밑에 모여 여름 걱정이 한창이었다.

화훼마을에서 40년을 거주한 이윤자씨(78·여·가명)는 "보다시피 집안에 있으면 너무 덥다"며 "에어컨이 있는 집도 있지만 그런 집은 10집중 한 집뿐이다. 나머지는 선풍기 하나로 버틴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어 "어제 전기세를 또 올리지 않았나. 선풍기 트는 것마저 걱정이 된다"며 "이제 겨우 5월인데 이번 여름은 어떻게 견딜지 벌써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송파구에서 재개발 소식이 끊긴 화훼마을 내 184세대중 실제 거주하는 세대는 약 40세대 뿐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씨처럼 이곳에서 40년 이상을 거주하며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추위와 싸운다.

그러나 올해는 평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전기세 폭탄 우려까지 겹쳐 주민들의 불안은 배가 됐다.

때이른 더위가 찾아온 17일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 옆 하천 바닥이 드러났다.ⓒ 뉴스1

◇"전기료 지원한다지만…자식 있다고 지원 대상도 안돼"

화훼마을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5평 남짓에 불과하다.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지난 겨울 쓰다 남은 연탄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방안에는 침대와 냉장고, 옷을 걸어놓은 행거, 더위를 식혀줄 선풍기가 차지했다.

주민들은 선풍기 조차도 올여름에는 틀기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 때문이었다.

지난 16일부터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8.0원 인상됐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에너지 취약계층은 평균 사용량(313㎾h)까지는 요금 인상분 적용을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또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을 기존 생계·의료 기초수급생활자 중 더위·추위 민감계층에서 주거·교육 기초수급생활자 중 더위·추위 민감계층까지 확대했다.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 지원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소진씨(74·여·가명)는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금은 안나온다"며 "전기요금 인상에 직격탄을 맞는 것은 우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매년 여름 선풍기를 틀어도 더위를 식히는 것은 언감생심"이라며 "올해는 이마저도 어려워 더 두렵다"고 덧붙였다.

화훼마을은 몇년째 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돼 방치된 마을이다. 184세대 중 대부분은 재개발을 기대할 뿐 이곳에 살지 않는다. 실거주민들은 갈곳이 없어 40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여름 혹서기 지원은 따로 없다. 그나마 매년 소방대원들이 폭염 대응을 위해 마을 전체에 물을 뿌리는 게 전부다.

윤여진씨(81·여·가명)는 "벌써 작년 6월 혹서기 때만큼 더운데 지금은 살수 지원마저 없지 않나"라며 "올해도 매년 이렇게 방치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때이른 더위가 찾아온 17일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 내 주거지 내부 모습.ⓒ 뉴스1

◇"비오면 집들이 물에 떠"…폭염만 걱정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의 걱정은 폭염만이 아니다. 저지대인 화훼마을은 옆에 하천까지 흘러 해마다 장마철 피해를 겪고 있다.

지난해 강남 지역 홍수때도 주민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윤씨는 "작년에 비가 억수로 왔을 때 집들이 물 위에 떴다"라며 "당시 쌓아놨던 연탄마저 비 때문에 가루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군인들까지 동원돼 피해 복구를 지원해 줬지만 그동안 우리가 갈 데가 어디 있었겠냐"며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화훼마을 주민들에게는 전기세 인상 소식과 함께 찾아온 때이른 폭염으로 더위를 피하는 것도 문제지만 6월말부터 이어질 장마기간을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여름에는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있어 더 걱정이다.

khan@news1.kr